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7일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 의혹 등과 관련해 “제 아내와 관련된 논란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언론에서 김씨가 2007년 수원여대에 제출한 교수초빙 지원서에 허위 경력을 적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지 사흘 만의 공식 사과다.
윤 후보는 이날 오후 3시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후원금 모금 행사에 참여한 뒤 당사 기자실을 찾았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A4 종이를 꺼낸 윤 후보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경력 기재가 정확하지 않아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 자체만으로 제가 강조해 온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께서 제게 기대하셨던 바를 결코 잊지 않겠다”며 “과거 제가 가졌던 일관된 원칙과 잣대를 저와 제 가족, 제 주변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돼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와 관련된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달게 받겠다. 그리고 더 낮은 자세로 국민께 다가가겠다. 죄송하다”고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였다. 발표 직후 ‘부인을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라는 기자 질문에 윤 후보는 “법과 원칙에 예외는 없다”고 짧게 답한 뒤 추가 질문을 받지 않고 퇴장했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후보 전략자문위원회와 오찬하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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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는 전날까지도 “사실확인이 먼저”라며 당장의 사과 표명과는 거리를 뒀다. 갑작스러운 사과 결심에 대해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제기된 의혹의 사실 여부를 일일이 다 확인해서 한참 뒤에 사과 말씀을 드리는 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전날 저녁 당 선대위가 김씨 관련 의혹 중 ‘어떤 것은 확인이 되는데, 어떤 건 도저히 확인 불가하다’고 상황을 보고하자 윤 후보가 “확인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과한다면 그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일단 지금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된 것 자체에 대해 국민께 사과 말씀을 올리겠다”며 결단을 했다는 게 이 대변인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결단의 배경엔 사실 확인을 앞세워 사과를 늦출 경우 여론의 급속한 악화를 피할 수 없다는 현실적 우려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자체 여론조사 결과 ‘김건희 이슈’로 인해 지지층(영남권·70대 이상 층)의 이탈 흐름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과문은 전날 밤 윤 후보가 직접 작성했으며, 사과문 발표 직전까지 철저히 보안이 유지됐다고 한다. 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오후 2시 당사 5층에서 열린 후원금 모금 행사 뒤 엘리베이터를 대기시키는 사이, 윤 후보가 계단으로 같은 건물 3층 기자실로 내려가더니 사과문을 꺼내 읽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선 윤 후보의 사과 내용 중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경력 기재가 정확하지 않아”라고 한 발언에 주목했다. ‘김건희 의혹’ 국면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문제가 있음을 처음 인정한 뉘앙스이기 때문이다. 사과의 포인트가 ‘허위경력 문제에 있는 것이냐, 논란에 따른 소란스러움에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대변인은 “(허위경력 의혹 중) 사실로 드러난 부분은 인정한 것”이라며 “아직 의혹 수준인 것도 있지만, 이것도 다 포함해서 사과한 것으로 봐 달라”고 했다.
김씨 관련 의혹이 제기된 이후 윤 후보의 태도는 시시각각 달라졌다. 당일인 지난 14일 오전엔 “현실을 알고 보도하라”며 기자들에게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가, 오후에 부인 김씨가 언론과 접촉해 사과하자 “국민의 기대에 맞춰 저희가 송구한 태도를 갖는 것은 맞는 태도”라고 한 발 물러섰다. 15일엔 “처 문제에 대해 국민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가 16일 결국 고개를 숙이고 공식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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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위와 당 지도부의 분위기도 윤 후보의 사과를 재촉하는 방향이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16일 출근길에 "사과 시점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했고, 이준석 대표도 SBS 라디오에서 “윤 후보가 겸손한 자세로 확인 과정을 거쳐 늦지 않은 시간에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원한 윤 후보 측 관계자는 “최근 며칠 동안 ‘김건희 이슈’에 묻혀 윤 후보가 안 보였다”며 “냉랭해지는 여론에 대선 후보 지지율까지 흔들리면서, 유세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윤 후보와 가까운 다른 인사는 “여당 후보 처럼 마이크 앞에 서서 제대로 된 사과를 해야 불길이 잡힐 것이라고 윤 후보에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장남의 불법 도박 의혹이 불거지자 곧바로 사과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처럼 사과해야 여론이 반응할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다는 뜻이다.
현일훈ㆍ김기정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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