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이강운의 홀로세 곤충기
안동대 학생들과 함께한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수업
멸종위기종 실험실서 물장군의 월동준비 지원
|
물장군은 곤충이지만 물고기와 올챙이, 개구리 등 자기보다 큰 척추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애피레터 구독신청하기 https://bit.ly/3kj776R
첩첩산중에 있는 강원도 연구소 겨울은 유난히 길다. 물도 얼고, 땅도 얼고. 모든 게 꽁꽁 얼어붙을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막 시작되었다. 산속 생활 25년이면 익숙해질 만도 한 데,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추위를 타니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은 아닌 것 같다.
북반구의 생물 대부분에게도 눈보라와 서릿발이 응축된 몇 개월의 추운 겨울은 생사의 갈림길이다. 오랜 기간 외부의 추위를 막아 줄 지속적인 보호막을 갖고 있거나 스스로 알아서 외부환경에 적응하여 생리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철새처럼 이주를 해버리던가.
|
먹이를 꼼짝 못 하게 움켜쥐는 물장군의 크고 날카로운 발톱.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물장군은 크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잡고, 뾰족한 주둥이로 자신보다 3배 이상 큰 황소개구리도 잡아먹는 물속 최강자의 위용을 자랑한다(▶
뱀과 거북까지 사냥하는 ‘포식자 곤충’, 물장군). 그렇지만 동장군 앞에서는 꼼짝 못 한다. 한겨울에는 숨을 골라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휴면 모드에 들어가는 것이 슬기로운 겨울 생활이다. 이제껏 쭉 살아오던 방죽이나 늘 얕게 고여있는 논의 물이 가장 좋은 월동지인데 다 없어졌으니 겨우살이 할 곳도 마땅치 않다.
지난달 26일 위드 코로나로 출입이 반짝 풀렸을 때 국립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수업을 했다. 종의 절멸을 막는 연구와 실질적 보전 방법을 발전시키고 있는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멸종위기종 실험실에서 물장군의 월동 과정을 직접 수행하면서 학생들이 보전생물학에 대한 감각을 익히도록 가르쳤다.
|
국립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학생들이 연구소로 현장 수업차 방문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숨구멍을 밖으로 낼 수 있는 얕은 물과 몸을 의지할 수 있는 발걸이를 갖춘 연못 형태의 안전가옥(월동 케이지)을 만들어주는 일이 첫 번째 할 일이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에 들어가 물장군 월동 케이지에 넣을 모래와 물을 채취하면서도 “시원하다” “손이 약간 빨개지긴 했는데 보들보들해졌다”는 학생들의 무한 긍정 에너지가 피부에 와 닿으니 같이 즐겁다.
|
꼬리의 숨구멍을 물 밖으로 내밀고 있는 물장군.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한 학생이 계곡에서 물장군 사육장에 깔 모래와 물을 채취하고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약 7개월간 사육하던 사육 케이지는 모래와 산소 발생기로 끊임없이 정화했지만 물장군이 먹었던 물고기 사체와 물장군의 배설물로 깨끗하다 할 수 없다. 케이지의 물을 뺀 다음 물장군을 건져야 날카로운 발톱에 찔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호스에 입을 대고 물을 빨아야 물을 뺄 수 있는데 한 학생이 힘껏 빨아들이다 오염된 물을 그만 꿀꺽 삼켜버렸다. 모두 재미있다고 난리지만 더러운 물을 삼켰으니 본인은 얼마나 괴로울까 위로했더니 “장군님이 계시던 물이라 그런지 맛이 괜찮다” 한다. 귀여운 놈, 분위기만으로도 흡족하다.
|
물장군 사육 케이지.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물장군을 보존하고 증식할 수 있는 서식지 외 보존기관이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멸종위기종을 증식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오랜 기간 적은 수의 개체 사이에서 짝짓기가 이뤄져 발생하는 이른바 ‘근교약세(近交弱勢)’ 현상이다. 근친교배로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지면 건강한 개체를 번식시킬 수 없으므로 사육 중에라도 교차 짝짓기를 시키려고 늘 준비한다. 암·수를 구별하고 일련번호를 매기는 방법을 배운 학생들이 능수능란하게 분류하면서 개체 정보를 담은 이력 번호를 물장군 등에 적는다. 짧은 시간에 과정을 완벽히 잘 익힌 학생들이 대견하다.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근친교배를 피하기 위해 물장군 등에 개체 정보를 담은 일련번호를 적는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분류작업이 끝나 개체번호를 새긴 물장군이 사육조에 담겨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족보를 정리한 물장군들을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 인큐베이터 월동지로 옮겨주니 이제야 안심이 된다. 생존율이 가장 낮은 월동 시기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도록 열심히 즐겁게 진행한 학생들의 공으로 올해는 수월하게 잘 마쳤다. 덕분에 내년 봄 건강한 물장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인큐베이터 내 월동 케이지의 물장군.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염된 물을 삼키고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멸종위기종 보전과 복원’에 대한 알싸한 경험과 새로운 시각이 생겼을 것이다. 같이 호흡하며 멸종위기종 보전의 어려움과 부가 가치를 몸소 경험하는 공부도 좋았지만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과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한 수업이었다.
숨쉬기도 겁나는 지구 환경을 내팽개치고 자기들 잇속 챙기는 일에만 집착하는 한심한 정치인들이 이렇게 깨끗한 2030 젊은이들의 신선한 에너지를 받아 지구를, 환경을 생각하면 좀 나은 미래가 오지 않을까?
▶물장군 물맛 끝내줍니다!-홀로세 곤충방송국 힙(HIB)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애니멀피플] 이강운의 홀로세 곤충기
안동대 학생들과 함께한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수업
멸종위기종 실험실서 물장군의 월동준비 지원
▶▶애피레터 구독신청하기 https://bit.ly/3kj776R
첩첩산중에 있는 강원도 연구소 겨울은 유난히 길다. 물도 얼고, 땅도 얼고. 모든 게 꽁꽁 얼어붙을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막 시작되었다. 산속 생활 25년이면 익숙해질 만도 한 데,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추위를 타니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은 아닌 것 같다.
북반구의 생물 대부분에게도 눈보라와 서릿발이 응축된 몇 개월의 추운 겨울은 생사의 갈림길이다. 오랜 기간 외부의 추위를 막아 줄 지속적인 보호막을 갖고 있거나 스스로 알아서 외부환경에 적응하여 생리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철새처럼 이주를 해버리던가.
물장군은 크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잡고, 뾰족한 주둥이로 자신보다 3배 이상 큰 황소개구리도 잡아먹는 물속 최강자의 위용을 자랑한다(▶
뱀과 거북까지 사냥하는 ‘포식자 곤충’, 물장군). 그렇지만 동장군 앞에서는 꼼짝 못 한다. 한겨울에는 숨을 골라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휴면 모드에 들어가는 것이 슬기로운 겨울 생활이다. 이제껏 쭉 살아오던 방죽이나 늘 얕게 고여있는 논의 물이 가장 좋은 월동지인데 다 없어졌으니 겨우살이 할 곳도 마땅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