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신주백이 쓴 '한국 역사학의 전환'
2019년 2월 28일 열린 역사학계 학술대회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광복 이후 76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역사학계 주변에서는 '식민사학'이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식민사학은 일제강점기 역사학자들이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한 한국 역사학을 뜻한다.
식민사학이라는 말의 강한 생명력은 철학, 문학, 정치학, 사회학 등이 수식어 '식민'과 결합하는 예가 흔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일제가 씨앗을 뿌린 근대 역사학을 재정립하는 것은 한국 사학계의 중요한 과제였다.
한국 근현대 학술사를 연구하는 신주백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휴머니스트를 통해 펴낸 신간 '한국 역사학의 전환'에서 1950∼1980년대 국내 역사학계가 어떻게 식민사학을 극복하고,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을 발전시켜 나갔는지 고찰한다.
저자는 5년 전 펴낸 전작 '한국 역사학의 기원'에서 19세기 말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 역사학의 탄생 과정을 살핀 바 있다. 그는 당시 한국 역사학이 지닌 여러 한계 중 하나로 식민주의 역사학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식민성을 꼽았다.
후속편에 해당하는 이번 책의 핵심 용어로 저자는 '관점과 태도로서 주체적이고 내재적인 발전'을 제시한다. '주체적·내재적 발전'으로 압축되는 이 문구는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자기 역사를 기록하고 역사학을 연구하는 동안에 형성됐다.
그는 "일본인이 주조한 식민주의 역사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자 한 한국 역사학은 내재적 발전의 맥락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대안을 모색했다"며 "이와 관련한 연구와 교육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보기에 역사학계에서 내재적 발전 관점은 독자적으로 태동하지 않았고, 북한과 일본 등 주변 국가와 학문적 교류를 통해 확립됐다. 예컨대 농업사에 천착한 김용섭이나 분단과 통일을 학문적 화두로 삼았던 강만길의 연구에는 일본이나 서구 학계의 동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저자는 '주체적·내재적 발전' 관점이 1950년대 태동해 1960년대 형성됐고 1970년대 분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병도를 필두로 한 문헌 고증사학 중심이던 역사학계에 1950년대 균열이 일어나면서 '주체적·내재적 발전'이 주목을 받았고, 1960년 4·19 혁명이 발생하고 근대화론이 유입되면서 한국사를 새롭게 연구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짚는다.
이어 식민주의 역사 인식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여해 1967년 한국사연구회가 발족했고, 1970년대 민중을 역사 주체로 인식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발생해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라는 두 가지 '학술장'이 경쟁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한반도 거주자의 지나온 시간을 주체적이고 내재적인 발전 과정으로 보려는 움직임은 한국인의 열등의식 내지는 낭패감을 떨쳐내는 데 지적 자극제이자 심리적 보충제 역할을 했다"며 다음 책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 역사학이 '진화'한 과정을 소개하겠다고 예고했다.
484쪽. 2만4천 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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