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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방심하지 마세요, 오늘은 당신이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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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내게 빛나는 모든 것

관객에게 즉흥으로 배역 지정, 매일 6~7명 배우로 깜짝 데뷔

조선일보

관객들의 참여로 진행되는 1인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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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마시라.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연출 문새미)에서는 날마다 관객 예닐곱 명이 배우로 데뷔(?)한다. 얼결에 배역을 맡아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니다. 끝날 때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당신도 별안간 지목될 수 있다.

무대는 동서남북이 다 뚫려 있다. 객석에 포위된 셈이다. 주인공 ‘나’는 엄마가 자해를 시도한 어린 시절부터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 물싸움, 풍선, 계절이 바뀌는 냄새, “괜찮아” 등 소확행 목록이다. ‘나’는 그것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읽어준다. 성장하면서 그 리스트는 불어나고 잊히고 재발견되기를 거듭한다. 몇몇 관객은 ‘수의사’ ‘아빠’ ‘양말 인형’ ‘문학 교수’ ‘그녀’ 등으로 이 1인극의 조력자가 되는데 누구도 저항하거나 거북해하지 않는다. 참여하는 즐거움부터 ‘나’를 응원하는 마음, 어떤 소속감까지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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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참여로 진행되는 1인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에서 나(백석광)가 포스트잇에 적힌 글을 읽고 있다.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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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빛나는 것의 목록을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고백한다. 엄마처럼 살까 봐 두려웠다고. 삶을 놓아버릴까 봐 두려웠다고. 한 관객은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그에게 “행복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답했다. ‘나’가 부탁해 ‘그녀’가 된 여성 관객이나 즉석에서 결혼식 축사를 해야 하는 ‘아빠’는 이 연극에 출연한 것일까 아닐까. 예측을 불허하는 삶처럼 그 경계 없음이 아슬아슬한 긴장과 재미를 준다.

현실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을 보면서 저마다 생각하게 된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게 된다. 이 작은 모노드라마가 안겨준 선물이다. 성장하면서 수천 개로 불어난 리스트가 결국 ‘나’를 말해준다. 이 겨울에 내면을 마주하게 하는 따스한 난로 같은 연극이다. 1월 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백석광·정새별·이형훈이 ‘나’를 번갈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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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백석광·정새별·이형훈이 주인공 '나'를 번갈아 맡는 1인극이다.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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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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