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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아무튼, 주말] 우주인들은 우주에서 콜라를 마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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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형준의 안녕, 우주]

튜브, 팩, 캔의 시대에서

경작의 시대로 가는 우주 음식

올해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캐나다 우주청(CSA)은 ‘딥 스페이스 푸드 챌린지’라는 우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공모전을 열었다. 화성으로 가는 3년 동안 네 우주인이 먹을 식량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주최 측은 총 50만달러(약 6억원)을 상금으로 내걸었다. 지난 10월에는 1단계 시스템 설계도 평가를 통과한 28팀을 선정하고, 2단계 생산 장치의 시제품 평가를 앞두고 있다.

우주 음식의 역사는 1961년 세계 최초로 우주에 나간 구소련의 유리 가가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주에서 머문 시간은 2시간이 채 안 됐지만, 그는 익힌 고기가 담긴 160g짜리 튜브 2개와 디저트인 초콜릿이 담긴 튜브 하나를 가져가 먹었다. 배가 고파서 먹었다기보다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인간이 음식을 섭취했을 때 음식이 위장으로 잘 내려갈지, 소화는 잘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튜브형 우주 음식은 이제 옛말이다. 지난 2019년 3월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인 앤 맥클레인(왼쪽)과 캐나다 우주인 다비드 생자크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용 피자를 만드는 모습./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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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인이 우주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았던 1960년대 중반까지 우주 음식은 무게와 부피를 줄이고 중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먹기 편한 튜브 형태 우주식이 제격이었다. 그러나 아폴로 달 탐사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우주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동결 건조한 음식을 진공으로 포장한 팩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방식의 ‘웻팩(wetpack)’이라는 우주식이 등장한 것이다.

건조한 상태로 가져가기 때문에 무게와 부피를 줄일 수 있었고 장기간 보존도 가능했다. 미트소스 스파게티, 소시지 패티, 치킨 스튜, 과일 케이크 등 우주 음식 70여 종이 이러한 형태로 개발되었다. 수분이 있고 따뜻한 음식이라 지상에서 먹던 음식과 식감이 많이 비슷해졌지만, 달에 다녀온 우주인은 대부분 음식에 대해 불평했고 체중도 줄었다.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는 신체 아래쪽에 있던 혈액과 세포액이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온다. 이 때문에 지구에 있을 때보다 코와 목이 부어 향과 맛을 느끼는 신경이 무뎌진다. 평형 감각을 잃어버려 생기는 우주 비행 멀미도 식욕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제한적이다. 우주에서는 탄산음료도 마실 수 없다. 음료 안에 녹아있던 탄산이 배 속에서 분리되면 중력이 있는 지상에서야 가벼운 기체가 식도를 타고 올라와 ‘꺼억’ 하고 탄산가스를 시원하게 배출할 수 있지만, 우주에서는 가스가 배출되지 못하고 매스꺼운 상태가 지속한다. 소금이나 후추 같은 양념류는 가루 상태로 쓸 수 없고 물이나 오일에 녹인 상태로만 가져갈 수 있다. 가루가 날아다니다가 우주인 눈에 들어가거나 기계에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들어 스카이랩이나 미르 같은 우주정거장에서 우주인들이 머무는 시간이 수주에서 수개월까지 늘면서, 우주인들에게 먹는 즐거움이나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우주 음식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좁은 좌석에 앉아 튜브를 짜 먹거나 팩에 물을 붓는 데서 벗어나, 지구에서 조리한 음식을 그대로 캔에 담아 가는 등 다양한 지구 음식이 우주식으로 개발되었다. 우주정거장을 방문하는 다양한 국적의 우주인 입맛에 맞춰 가짓수도 늘었다. 치킨 콘소메와 버섯 크림 수프, 치즈와 닭고기가 들어간 볶음밥, 과일 칵테일, 달걀 스크램블 등 지금까지 300가지 넘는 식단이 개발됐다.

일본은 현재 제조사 26곳에서 만든 일본 우주 음식 47종을 제공하고 있고, 이슬람 국가 우주인들을 위한 할랄(Halal) 음식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8년 이소연 박사가 국제우주정거장을 방문했을 당시 김치, 밥, 고추장, 된장국 등 한국의 전통 식품 10종을 러시아 의생물학연구소(IBMP)에서 우주 식품으로 최종 인증받기도 했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무는 우주인들은 우주로 가기 전 이 메뉴들의 맛을 일일이 평가하고 2주(16일)마다 바뀌는 개별 식단을 짠다.

이처럼 우주 음식은 우주인이 우주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함께 발전해 왔다. 그럼 우주 거주 기간이 수년에 이르는 화성 유인 탐사에는 어떤 우주 음식이 적합할까?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무는 우주인들은 수개월에 한 번씩 지구의 신선한 식품을 공수받고 있지만, 1년 6개월 정도가 유통 기간인 저장 음식을 주로 섭취하고 있다. 그러나 가는 데만 최소 6개월, 임무 기간이 수년에 이르는 화성 탐사에는 음식을 모두 싸 갈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에서 음식 재료를 키우는 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2015년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레드 로메인 양상추 수확에 성공한 이래, 최근에는 고추를 수확하는 데 성공했다. 주로 토마토, 양파, 케일처럼 따서 먹는 야채 종류가 주 연구 대상이지만, 화성 토양에서 키울 수 있는 감자, 고구마 같은 곡물로도 연구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주 음식의 문제가 우주 경작 가능성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우주선 안에서 식물은 인간에게 식재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생명 순환 시스템의 일부를 이룰 것이다. 광합성을 통해 산소, 이산화탄소, 물을 흡수하고 내놓는 과정에서 유기물을 합성해 저장하고 씨앗을 통해 대를 이을 것이다. 인간은 이 과정에서 생산된 부산물을 섭취하고 배설물을 다시 비료로 활용할 것이다. 이처럼 식물과 인간은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지구 밖의 닫힌 순환 시스템 안에서 공존할 것이다. 지구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식물을 인간이 섭취하면서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 것인가. 또 어떤 새로운 조리법과 기호가 어떤 새로운 문화를 만들 것인가. 딥 스페이스 챌린지 이후를 생각해 본다.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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