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은 지난달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가 시작된 이후 직원을 새로 뽑고, 식재료 구매도 늘리는 등 연말 특수를 기대했다가 날벼락을 맞게됐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노모(64)씨는 “다음 주에 10명 규모 직장인 단체 예약이 3건 있었는데 오늘 오전에 전부 취소됐다”며 “11월 들어 장사가 좀 풀리는가 싶었는데, 올 연말 장사는 물 건너 간 것 같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은 특히 백신패스를 식당·카페, PC방, 독서실 등으로 확대한 조치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줄이고 주인 혼자 운영하는 가게도 많은데, 일일이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실내체육시설 업주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이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이모(39)씨는 “손님 한명 한명한테 방역패스가 뭔지 설명하기도 지치고, ‘왜 입장을 안 시켜주냐’고 손님이 멱살을 잡은 일도 있었다”고 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모(29)씨는 “백신패스 때문에 손님과 마찰이 생길까봐 걱정된다”며 “1인은 백신패스 예외라고 하던데, 우리 식당은 기본 2인 이상 주문을 받고 있어 정확히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손님은 받지 말아야 하는데, 손님 한 명이 아쉬운 자영업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서 100석 규모 PC방 운영하는 김모(37)씨는 “휴대폰 게임에 열중하느라 수기 명부만 작성하는 손님들이 많아서 백신 접종을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2년 가까이 영업을 제한해 왔는데, 방역패스까지 적용되면 완전히 죽으라는 것과 다름 없다”고 했다.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최모(28)씨는 “위드코로나라고 해서 점점 찾아오는 손님이 늘고 있다가, 이제 다시 밥줄이 끊기게 생겼다”고 했다.
3일 전국 자영업자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새 방역조치와 관련된 불만 글이 수십 건 올라온 상태다. “진짜 지킬만큼 지키고, 백신 맞으라고 한만큼 맞았다. 이번에 다시 거리두기하면 진짜 죽는다” “작년 12월의 악몽이 또 시작된다” “2년 괴롭히고 한 달 풀어주더니, 정말 못 해먹겠다” 등의 내용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학원, 독서실, 스터디 카페 등이 포함된 것에 대해 “백신 안 맞으면 공부도 못 하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는 기존의 18세 이하였던 백신패스 예외 연령을 11세 이하로 낮춰, 내년 2월부터는 12~18세에게도 백신 패스를 적용하기로 했다. 청소년들이 백신 접종을 맞도록 약 8주간의 유예 기간을 준 것이다.
지난 11월12일 방역 관계자들이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김영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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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에서 독서실을 운영하는 전모(53)씨는 “독서실은 물 마실 때 빼고는 마스크를 내리지 않고, 학생들도 스스로 코로나 걸릴까봐 노심초사해서 집보다 안전한데 굳이 백신을 검사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국가가 언제까지 모든 걸 다 틀어막을 생각이냐”고 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는 이모(42)씨는 “지금 무인으로 운영 중이라 백신 확인을 어떻게 해야할 지 걱정”이라며 “청소년들에게도 사실상 백신을 맞으라고 강요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내년 2월부터 학원에 못 보내는거면 과외 선생님을 알아봐야겠다”, “청소년 접종률 높이려고 학원, 스터디카페까지 건드린거냐”와 같은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번 백신패스 조치에서 백화점, 상점·마트, 결혼·장례식장, 전시회·박람회, 종교시설 등은 모두 제외됐다. 조지현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벌써부터 단체 예약 취소가 시작됐고,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고객들과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며 “최근 확진자가 많이 나온 시설에는 적용하지 않고 자영업에 이를 적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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