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클래식’ 선두주자 김택수 작곡가
아이들 놀이가락 재해석한 ‘국민학교 환상곡’
15분길이 ‘정가’ 타임랩스처럼 왜곡 ‘인☆가’ 등
클래식에 스며든 한국의 일상·국악적 요소
전통담은 새로운 시도 ‘재미·교감’ 전세계 주목
한국의 익숙한 일상과 풍경을 소재로, 국악을 음악적 요소로 결합해 재기발랄한 현대음악을 선보이는 김택수 작곡가는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K-클래식의 선두주자다. 그는 “작곡가는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갈아넣었더니 한국은 피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현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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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K-드라마 붐을 이끈 ‘오징어게임’(넷플릭스)보다 무려 8년은 빨랐다. 글로 봐도 음이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놀이 가락은 ‘국민학교 환상곡’(2013)이라는 현대음악으로 태어났다. 한겨울에 들리는 정겨운 소리 ‘찹쌀떡’(2013), 한국의 음주가무를 주제로 한 ‘짠!!(Zzan!!)’. 익숙한 일상의 풍경은 모두 음악이 됐다. 현대음악에 유머가 더해지자 어려워서 지루하고, 그래서 골치 아픈 음악이라는 편견이 깨졌다. ‘남의 나라’ 음악에 한국인의 정서와 국악적 요소가 들어가자 ‘K-클래식’이라는 수사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음악의 소재를 일상에서 찾아왔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일상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특이한 걸 좋아하는 저의 입장에서 남들과 똑같은 것을 한다는 건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찾은 것이 한국적 일상이에요.”
국악의 산조에서 빨라지는 패턴을 가져온 ‘Pali-Pali!!’. 제목부터 ‘한국인의 정취’가 강렬히 풍긴다. ‘빨리빨리’를 영문 철자로 옮겨 적은 이 곡은 올해 미국 버를로우 작곡상(Barlow Prize)을 수상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축축 늘어지다 힘차게 달려가고, 재기발랄하게 쪼개진 리듬을 연주자들이 바쁘게 맞춰간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을 음악으로 담았다고 한다. 해마다 작곡가를 선정해 수여하는 미국 유타주의 브리검 영 대학의 버를로우 기금에 올해에는 총 41개국에서 574명이 응모했다. 한국인 최초로 이 상을 받은 주인공은 김택수(42). 지금 전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작곡가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국립극장에서 만나 음악 이야기를 들었다.
김택수 작곡가의 음악엔 그의 삶과 경험이 응축됐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을 접했는데, ‘과학 영재’였다. 고교 시절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음악을 다시 시작한 건 그 이후였다. 같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작곡을 공부한 후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음악과 과학, 한국과 미국을 오간 경험과 정서는 음표로 옮겨졌다.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은 ‘음악적 소재’가 됐고, 과학도라는 이력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됐다.
“저의 스승 중 한 분이신 진은숙 선생님께서 항상 작곡가는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는 거라고 하셨어요. 전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그게 맞다고 생각해 어린시절부터 갈아 넣었더니 한국은 피해갈 수 없더라고요. 억지로 하는 느낌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클래식과 국악을 결합한 시도 역시 자연스러운 실험이었다. 그는 2017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위촉한 ‘더부산조’, 최근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선보인 ‘2021 리컴포즈’ 무대를 통해 진화한 음악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2021 리컴포즈’에선 구음을 활용한 ‘입타령’과 클래식의 미니멀리즘과 국악관현악을 접목한 ‘무궁동’을 선보였다. ‘리컴포즈’ 무대는 2015년 이후 6년 만이다.
“제가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국악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를 국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이에요. 때론 국악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내가 국악을 하는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국악 전공자가 아니라는 것이 강점이기도 하더라고요.”
총 여섯 개의 곡으로 구성된 ‘입타령’은 각각의 곡에 붙은 제목부터 재치있다. ‘Nong(농)·인☆가(feat. 권주가)·th ㅓ·스겅·제목 없음·입가심(feat. 매화가)’ 등이다. “ ‘입타령’은 국악의 장르 중 가사를 기반으로 썼어요. 상식을 깨보자는 취지였죠. 영어로는 스캣이기도 하고, 랩을 할 때의 비트박스도 입타령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을 기반으로 국악의 농음을 극대화하는가 하면, 한국어가 아닌 다른 발음이나 국악에선 흔치 않은 음역 등 여러 요소를 활용해 국악을 실험했어요.” 곡 전반엔 ‘과학자의 마인드’가 아이디어로 결합됐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숏츠에 올리는 15~30초 분량의 짧은 영상처럼 음악을 압축하는 실험도 했다. ‘인☆가(feat. 권주가)’에서 등장한 15분 길이의 정가를 “타임랩스처럼 빠르게 만들어 왜곡하는 시도”다. ‘무궁동’은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의 현재를 반영해 도시의 느낌을 전달하는 실험”을 이어갔다. 공연을 함께 한 최수열 지휘자는 “두 곡 모두 국악기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역작”이라며 극찬했다.
새로운 시도는 난데없이 등장한 것이 아니다. 김택수 작곡가는 “지금은 전통을 담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우리 세대 창작자들이 다 같이 고민하는 시기”라고 봤다.
“1970년대 중후반~1990년대까지의 세대가 접한 한국은 이전 세대가 접한 한국과는 달라요. 각자가 접해온 한국과 듣고 자란 음악이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고 있어요. 방탄소년단 역시 양악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국악을 접목한 거고요. 조금 더 자유로운 발상을 할 수 있는 세대이고, 국악은 어때야 한다는 도그마가 약해진 시대,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는 명제에 ‘무엇이 좋은 것이냐’고 질문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새로운 창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일상의 소재’는 때론 ‘발상의 가벼움’으로 치부되나, 김택수 작곡가는 자신의 “음악적 키워드는 재미와 교감”이라고 강조한다. “꼭 음악을 배워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닌, 클래식을 잘 몰라도 대중음악만 듣고 자란 사람들에게도 그럴 듯하게 들리는 음악, 클래식을 아는 사람이 들어도 세련미가 있고 접근성이 있는 음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접점을 찾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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