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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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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애니도 BTS 노래처럼…우리들 이야기로 채워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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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애니 ‘무녀도’ ‘태일이’ 개봉

안재훈·홍준표 감독 훈훈한 대담


한겨레

지난 25일 오후 서울 중구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에서 <무녀도>의 안재훈 감독(왼쪽)과 <태일이>의 홍준표 감독이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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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의 한국 애니메이션이 잇따라 관객들과 만난다. 지난 24일 개봉한 안재훈 감독의 <무녀도>와 1일 개봉하는 홍준표 감독의 <태일이>는 한국 애니계에 찾아온 선물 같은 영화다.

지난해 ‘애니계의 칸’으로 불리는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콩트르샹 섹션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무녀도>는 김동리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한 가족의 운명적인 갈등을 전통과 종교의 대립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뮤지컬 애니로 고스란히 구현해냈다. <태일이>는 1971년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온몸을 바친 인간 전태일의 생애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따스한 애니로 그려낸 작품이다. 열사의 무게를 덜고 20대 전태일의 삶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사람을 보는 눈에서 한국 애니 감독들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방탄소년단(BTS)이 노래 속에 시대를 담으려고 하는 것처럼 <태일이>나 <무녀도> 같은 작품들도 시대를 이야기한다.”(안재훈 감독)

“한국 영화 보는 걸 촌스럽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안 그렇지 않나. 한때 웹툰도 애들이 보는 것이라 여겼다. 이런 걸 보면 한국 애니도 한국 영화처럼 머지않아 크게 성장하리라 본다.”(홍준표 감독)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했던가. 지난 25일 서울 중구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에서 만난 두 감독은, 서로의 작품에 대한 지지부터 연출 과정의 주안점, 한국 애니의 오늘과 내일에 이르기까지 2시간에 걸쳐 훈훈한 대담을 나눴다. 2006년 만화 <태일이> 기획 단계에 참여하기도 했다는 안 감독은 전태일과 관련된 사적 인연을 보태며 경쟁작(?) <태일이>의 흥행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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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무녀도> 스틸컷. 씨네필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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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안재훈(이하 안) 단편 애니 <메밀꽃 필 무렵>(2012)을 시작으로 <운수 좋은 날> <봄봄> <소나기> 등 한국 단편을 바탕으로 애니를 만들어왔다. 김동리 선생이 <무녀도>를 썼던 1930년대에는 ‘우리 것을 지키자’가 메시지였다면, 다시 읽어보니 무당 모화가 겪는 직업의 종말이나 여성이 처한 현실 등이 드러나더라. 지금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준표(이하 홍) 2017년 제작사 명필름이 전태일을 소재로 애니 영화를 만들고자 감독을 섭외하던 중에 제안이 왔다. 전태일을 잘 알지 못했고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탓에 처음엔 부담이 많았다. 기록과 평전을 읽어보니 열사보다는 그 또래 청년 전태일 느낌이 더 들더라. 열사나 노동운동가보다 소소한 인물의 이야기로 접근하면 도전할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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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서울 중구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 작업실에서 만난 <무녀도>의 안재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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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신문 배달을 했다. 전태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2006년엔 전태일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도 스태프들과 다 같이 봤다. <무녀도> 작업이 아니었다면 <태일이> 작업을 거들었을지도 모른다. 젊은 감독이 지금의 시각으로 얘기하는 게 좋아 보인다.

전태일이 살던 시대의 평화시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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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무녀도> 스틸컷. 씨네필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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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 모두 제작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뮤지컬 애니라 성우의 노래와 입 모양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일본어는 입이 3~4개 모양만으로도 맞는데 한국어는 받침 때문에 어렵다. 저희만의 입시트를 7가지 만들어 그렸다. 무녀가 입은 한복에 무늬가 많아 그걸 그리는 데도 손이 많이 갔다.

<무녀도> 예고편 보고 무당 옷의 무늬나 옷자락을 그리기 힘드셨겠다고 생각했다.(웃음) <태일이>는 가난한 시절이라 옷이 화려하지 않다. 다만 상상력이 아니라 철저하게 시기별로 고증한 자료를 바탕으로 건물이나 배경을 그려야 했고, 창문도 없던 당시 공장 안 풍경을 빛 조절로 묘사하는 일 또한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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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태일이>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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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감독의 고충은 영화 완성도에 대한 겸양처럼 들렸다. 한국의 전통적인 색감과 소리를 스크린에 복원해낸 <무녀도>에서 무당 모화는 처연한 슬픔을 안고 굿판을 벌인다. 추상 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그림처럼 색으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모화가 입은 붉은색 저고리에 투영돼 있다. 국악과 양악으로 대비되는 모화와 아들의 노래는 각각 뮤지컬 배우 소냐와 김다현이 맡아 몰입을 극대화한다. 장동윤(전태일)과 염혜란(이소선 여사)을 비롯해 권해효, 진선규, 박철민 등 연기파 배우들이 목소리를 연기한 <태일이>는, 자연스러움을 위해서 녹음 뒤 작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실제로 만든 세트에서 배우들과 ‘가이드 촬영’을 하고 이에 맞게 카메라 위치와 렌즈를 조절하는 등 연기·동선 연출에 있어서도 공을 들였다. 두 작품 모두 한국 애니의 최대치가 담겨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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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서울 중구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에서 만난 <태일이>의 홍준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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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는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메가 히트작이 없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미국은 미키마우스, 마블 같은 것을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면서 애니가 사회에 자리잡았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애니는 특이하게 미국·일본 애니의 하청 작업에서 시작됐다. 한국 애니가 한국인들과 함께 성장해야 할 기간을 미국·일본 애니에 내준 탓에 한국인들의 영혼 속에 남지 못했다.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로 그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 계속돼야 한다. <태일이>는 그런 시도다.

안 감독님의 말씀, 감사하다. <카뷰레타>(2009)를 시작으로 <요일마다>(2017)까지 단편만 만들다 첫 장편 데뷔를 한 터라 한국 애니 상황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산업적인 측면에서 육성이 이뤄지려면 정부 지원과 함께 대기업 투자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지옥> 등 웹툰을 실사화하는 작업이 크게 늘었는데, 애니로 만드는 작업도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한국 애니 시장이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애니도 키즈 콘텐츠 이상의 영화산업의 한 장르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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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태일이>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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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전태일, 그리고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 서울 모습을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관객들도 영화 속 태일이를 위로해주고, 그 위로를 통해 스스로도 힘을 얻었으면 한다.

전태일의 희생으로 가장 직접적 영향을 받은 분들이 지금의 40~50대다. 사실 그분들 나이대의 행운과 삶은 선배 세대 노력으로 이뤄졌다. 또한 그분들이 한국 애니와 가장 멀리 떨어진 세대이기도 하다. <태일이> 많이 봐달라는 얘기다. 잘돼서 <무녀도>에도 관객을 꿔주시면 좋겠다.(웃음)

진행·정리·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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