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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수요동물원] 사자가 빙의했나…새끼 물어죽이는 얼룩말의 잔혹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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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차지하면 전 우두머리의 새끼 잔혹하게 살해

천적 사자와 빼닮은 습성…뒷발차기와 이빨은 공포의 무기

오늘은 다소 충격적이고 보기 거북할 수도 있는 유튜브 채널 ‘TubeZoo1tv’의 동영상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하루에도 헤아릴 수없이 생로병사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아프리카의 사바나. 여기 또 한 생명이 막 탄생합니다. 어미가 1년 가까이 고이 품어서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얼룩말의 경이로운 탄생순간입니다. 그런데 이제 산통에 버둥거리며 새 생명을 내보내려는 암컷 옆에 불청객이 와있군요. 만일 피와 살냄새를 맡고 접근한 사자나 하이에나, 리카온이었더라면, 이들 어미와 새끼는 잔혹극의 희생자로 전락했겠지요. 옆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은 늠름한 수컷 얼룩말입니다. 남편과 아비로서 제임무를 다하려 천적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있는 것일까요? 충격적인 반전이 시작됩니다. 수컷 얼룩말은 아직 출산도 하지 않은 만삭의 산모의 얼굴을 마구 물어뜯습니다.

얼굴에는 분노와 질투가 서려있습니다. 양수가 터지고 태반과 함께 망아지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 수컷은 망아지를 향해 묻지마 공격을 시작합니다. 이빨로 물어뜯고 거친 발굽으로 마구 내리꽂습니다. 채 눈을 뜨기도 전에 망아지는 거친 발길질과 이빨 공격에 만신창이가 됩니다. 어미의 처절한 본능은 출산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웁니다. 태반과 양수와 피로 범벅이 돼 제 몸 한 몸 가누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새끼를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에워쌉니다. 있는 힘을 다 짜내어 뒷발공격으로 수컷에 저항합니다. 그러나 체력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인 수컷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잔혹함의 강도는 덜하지만 또 다른 유튜브 채널 ‘BUZZBIBLE VIDÉO’도 잔혹하고 비정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바나의 야수 사자, 하이에나, 리카온, 표범이 마치 이 초식동물에 빙의된 모습입니다. 막 출산해 몸이 성치 않은 암컷에 발길질을 하더니 다시 축 늘어진 망아지를 여러 번 짓밟아대고, 다시 이빨로 얼굴을 물고 질질 끌고 갈 태세입니다. 바로 망아지 몸뚱이에 고개를 파묻고 식사를 할 것처럼요. 이 얼룩말 망아지가 살아날 가능성은 극히 적어보입니다. 오늘 당장 목숨을 건졌어도 제대로 성장하기엔 타격이 커보입니다. 얼룩말이나 누 같은 사바나의 초식동물은 태어난 직후 육식동물의 사냥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얼룩말은 그 위기는 넘겼지만, 그보다도 더 가혹한 살인자를 만났습니다. 바로 혈연이 없는 우두머리 수컷을요. 오늘 봉변을 당한 얼룩말 암컷과 그 망아지에겐 ‘원죄’가 있었습니다. 세력 다툼으로 쫓겨난 옛 우두머리의 배필이었거나 혈통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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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무늬가 아름다운 그레비얼룩말. /스미스소니언동물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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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패륜도 이런 패륜이 없습니다. 수컷이 여러마리의 암컷을 무리에 두는 하렘 형태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이처럼 냉혹한 법칙에 의해 무리가 유지됩니다. 힘있는 수컷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이죠. 힘센 수컷이 절대 왕정을 차지하는 순간, 쫓겨난 전 우두머리의 씨로 태어난 망아지와 복중태아들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것’이 돼버립니다. 이쯤에서 어떤 동물이 떠오르시지 않습니까. 얼룩말의 영원한 천적 ‘사자’ 말이죠. 아프리카의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을 대표하는 두 짐승은 힘있는 중심으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육경쟁으로 종족이 유지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자 역시 무리의 번식권을 틀어쥐고 있는 우두머리 수컷이 도전자(들)과의 혈투에서 쫓겨날 경우 기존 수컷의 씨를 받은 새끼들은 모조리 살육의 대상이 됩니다. 젖을 물리고 키울 새끼가 사라져야 암컷들이 임신 준비가 되도록 생체 리듬이 설계돼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더 강한 자들의 유전자가 이어지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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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중에 가장 흔한 종류로 알려진 그랜트 얼룩말. /미 어류야생동물보호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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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자·하이에나·악어 등에게 숱하게 잡아먹히다보니 유약한 동물로 알려져있지만, 이 얼룩말도 전투력과 성질머리로 따지자면 초원의 깡패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특히 전매특허인 뒷발차기 공격으로 자칫 천적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게 나옵니다. 초식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공격할 때 물어뜯는 이빨 공격을 보면 하이에나나 리카온이 빙의된 것 같기도 하고요. 얼룩말의 수컷은 태생적으로 잡초처럼 거칠게 자라날 운명입니다. 통상적인 무리는 우두머리 수컷 한마리가 대여섯마리의 암컷과 새끼들을 거느리는 형태지요.

사바나에 수백 수천 마리의 얼룩말이 흩어져있지만, 대개 10여마리의 무리로 구성돼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하나의 무리가 있습니다. 수컷들만의 무리지요. 태어나서 3살쯤 되면 수망아지는 어미 품을 빠져나와 이 수컷들 무리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대여섯살될때까지 자라난 뒤 자신의 무리를 꾸리기 위한 여정을 나섭니다. 그 여정이란게 바로 혈투와 살육인 것이죠. 아마도 수컷무리에 들어간 망아지들은 강자에게 짓밟히고 약자를 억누르는 법을 본능적으로 깨치며 유일한 삶의 법칙을 배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하다는 것을요.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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