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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편지 ⑬] 쿠데타 300일…군부뿐 아니라 양극화와도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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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4일 미얀마 양곤에서 반군부 시위대가 깜짝 시위를 열고 있다. 양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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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300일이 넘었습니다. 지난 9월 12번째 ‘미얀마 편지’를 보내고 바쁜 삶 때문에 잠시 소식 전하는 것을 미뤘습니다. 10년 전 미얀마 가뭄 때 겪었던 최악의 정전 사태가 지금은 일상이 됐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27일 현재도 전기가 끊겨, 배터리가 방전된 노트북 대신 상태 괜찮은 옛 노트북을 꺼내 들었습니다. 한국 같았으면 큰 혼란이 일었겠지만 이곳은 태연한 편입니다. 미얀마의 가장 큰 도시인 양곤이 이런 상황이니 지방은 어떨지 짐작이 가시리라 생각됩니다.

소셜미디어(SNS)로 전해지는 미얀마의 지방 소식은 양곤보다 훨씬 비참합니다. 전기는 사흘에 한 번꼴로 공급되고, 미얀마군과 시민방위군(PDF)과의 교전이 확대되면서 거처를 잃은 난민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친주의 산악 마을 딴틀랑은 군부의 포격을 앞두고 2천여 가구가 통째로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정부군의 공격을 받은 산악 마을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은 시신들은 한참이 지나 덤불 속에서 앙상한 유골로 발견되곤 합니다. 미얀마 시민단체가 집계하는 정부군에 의한 사망자(1294명) 통계에 이런 죽음은 포함돼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사는 양곤에서는 여러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임시정부 격인 국민통합정부(NUG)가 발행하는 국채를 구매하며 반군부 투쟁에 힘을 보태는 시민들이 있지만, 고급 루프톱 바에서 저녁 모임을 갖고 이를 자랑하듯 본인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양곤을 비롯해 만달레이 등 대도시에서는 친군부 밀고자를 암살하는 반군부 조직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암살 대상이 밀고자의 가족들로까지 확대되면서 과도한 연좌제적 처벌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양곤의 대표적인 고급 쇼핑몰 ‘미얀마 플라자’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선전물을 뿌리며 기습 시위를 했습니다. 경비들은 쇼핑하는 고객들에게 방해된다며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경찰에 넘겼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은 하루 만에 경비들의 신원을 찾아 인터넷에 공개하고 미얀마 플라자 불매운동에 나섰고, 시민방위군은 보복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군경은 쇼핑몰 앞에 차량과 병력을 배치했고, 쇼핑몰 내 매장들은 앞다퉈 임시휴업을 공지합니다. 주미얀마 한국 공관도 당분간 쇼핑센터 방문을 자제하라고 교민들에게 안내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가 체포되는 사진과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졌는데, 쇼핑몰 경비나 군경에 대한 분노와 함께 편안하게 쇼핑을 즐기는 이들을 비판하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시민들 마음속에 내재해 있던 양극화와 기득권 계층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서히 퍼지는 것 같습니다.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와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폭발적인 물가 인상이 이뤄졌고, 빈부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군부를 향한 분노가 기득권 시민들에 대한 분노로 향하는 것, 군부가 원하는 게 바로 이런 ‘분열’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민통합을 목표로 출범한 임시정부가 이 숙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미얀마 사태는 더욱 심각한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미얀마를 보면서 우리가 일궈온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과 희생 속에서 어렵게 피워낸 것인가를 새삼 느낍니다. 다음에 오는 이곳의 봄은 꽃냄새 가득한 봄이길 기대합니다.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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