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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요소수 품귀 현상

[손일선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중국한테 훈계 들어야 했던 요소수 대란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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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 요소수가 대한민국을 휘청이게 했다.

파동의 발단은 중국이었다. 지난 10월 11일 우리나라 관세청에 해당하는 중국 해관총서가 짧은 공고문(제81호)을 지방 세관에 하달했다. 화학비료와 관련된 29개 품목에 대해 수출 검사를 실시하라는 지침이었다. 시행일은 10월 15일. 여기에 요소가 들어가 있었다. 문제는 중국 정부의 수출 검사 실시 정책이 사실상 수출 제한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때부터 국내 요소 수입업자들이 요소 수입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요소 수입량의 97%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속수무책이었다. 중국의 지침 발표 이후 보름도 안 돼 요소수 품귀 현상이 시작됐고 한국 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는 커져만 갔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거북이처럼 느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선 초병 역할을 했어야 할 주중 한국대사관과 코트라(KOTRA) 중국본부가 중국 현지에서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휘보고체계를 살펴보면 주중 한국대사관은 외교부에, 코트라는 산업통상자원부에 직접 보고하는 구조다. 가장 먼저 중국 동향을 파악하고 한국에 보고해야 할 주중 한국대사관부터 사실상 직무유기에 가까운 실책을 했다.

국내 언론에 따르면 지난 10월 2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 중이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현지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했지만 요소수 문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한중 외교장관 회담 전까지) 요소수 문제에 대한 내용을 보고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 조치가 나온 이후 2주가 넘게 지났음에도 제대로 장관에게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주중 한국대사관의 실책이 가장 큰 원인으로 거론된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중국 해관총서 지침이 가져올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부실보고’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장하성 주중한국대사의 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다. 대사 임명 당시부터 중국 대사직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아온 장 대사의 무능과 정권 말기 해외공관의 해이해진 기강이 결합된 인재라는 것이다. 코트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0월 20일 요소 수출 제한과 관련된 업체의 민원을 받고 코트라에 보고서를 요청했다고 한다.

매일경제

중국 상하이 양산항. 중국이 요소수 수출 제한을 통해 한국에 경고를 던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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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병 역할 해야 할 대사관 골든타임 놓쳐

하지만 하루 뒤 코트라가 산업부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비료 중심으로 내용이 작성돼 있고 요소수 부족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중국 현지에서 1차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코트라 본사도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 현지에서 요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정부의 대응도 늦어졌다. 11월 2일에서야 국무조정실과 관계 부처 간 첫 합동 회의가 개최됐고, 청와대에서 요소가 논의된 것은 4일이었다. 이 같은 정부의 총체적 부실 대응은 중국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받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요소수 부족 사태가 심각해지자 중국 인터넷매체 펑파이는 “한국의 자동차용 요소는 거의 전량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며칠째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영 청두 TV가 운영하는 인터넷매체 ‘선냐오즈쉰’은 이 “한국이 중요한 전략자원을 자급자족하거나 비축 체제를 구축하지 않았다”면서 “자업자득으로 중국과 무슨 관계냐”고 지적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반도체 위기를 거론하며 한국이 과거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매체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급해진 정부의 뒤늦은 총력전이 결실을 맺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가 11월 10일 한국 기업들이 이미 계약한 요소 1만8700t에 대한 수출 절차를 진행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중국이 한국에게 할 수 있는 성의표시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이 입장을 바꿔 한국에 다시 요소를 보내주겠다고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일단 외견상으로는 중국 내 비교 수급 상황이 중국이 수출 제한을 해제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 내 요소 수급이 수출 중단 조치를 취한 10월 초에 비해 크게 개선된 것이다. 중국 팡정선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15일 이후 수출이 제한되면서 중국 내 요소 재고는 83만3000t(11월 4일 기준)에 달한다. 보고서는 “이 같은 재고 규모는 최근 5년 새 최고치”라고 전했다.

당초 중국 정부가 요소 수출 제한 조치의 이유로 제시한 중국 내부의 비료 공급난이 다소 완화된 것이다. 여기에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이 한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하에 아태지역 동맹국들을 규합해 대대적인 대중국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미국 쪽으로 확 쏠리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국 외교 전략상 중요한 부분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중국은 그동안 외교적으로 한국과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확산 와중에도 한국과 중국이 올해 들어서만 3차례 외교장관 회담을 진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대북정책 협조 등 한국의 필요에 의한 만남의 성격도 크지만 중국 역시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내민 손을 덥석 잡고 고마워만 할 일은 아니다. 중국이 요소 선물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중국 내에서는 한국이 중국의 배려에 걸맞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주요 반도체 공급처인 한국이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미국 쪽에 일방적으로 줄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중국이 요소수라는 ‘당근’을 제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온라인상에서는 “중국이 요소수를 주면 한국은 반대급부로 중국에게 보답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게재됐다.

▶미중 갈등 속 요소수로 한국에 ‘실력행사’한 중국

특히 중국은 이번 요소수 사태로 중국의 공급자적 위상을 다시 한 번 한국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얻었다. 국방시보 자매지 파이토우쥔시는 “(이번) 한중 대량 요소수 주문 체결로 한국의 자동차 제조 및 물류 발전을 구현했다”며 “중국은 이웃나라 한국이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도왔고 대국으로서의 중국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중국에게 노출한 것이다. 요소 외에도 상당수 중요 품목의 공급을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언제든지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 매체인 런민즈쉰은 “이번 공급 위기를 통해 한국은 중국이 가진 중요 지위를 더욱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며 “(중국에 대한) 대항을 추구한다면 반드시 자신에게 해를 입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내 SNS에도 “한국이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요소수를 한국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손일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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