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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경찰은 왜 피해자에게 스토킹 증거 원하나...살인범과 셀카 찍을 순 없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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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공개된 김병찬 피해자의 유족의 호소
"스마트워치 위치추적 오류뿐만 아니라
경찰이 피해 증거 요구하거나 소극적 대응"
"준비한 흉기로 집 앞에서 기다렸다 살해
증거인멸 정황도 있어"... 계획 범죄 주장
한국일보

스토킹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검거된 김병찬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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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자친구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다 끝내 살해된 피해자의 동생이 "언니가 평소 '경찰은 증거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고 답답해 했다"고 성토했다.

피해자의 동생 A씨는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경찰의 소극적 대응을 강력 비판했다.

24일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 김병찬은 19일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피해자를 살해했다. 피해자는 경찰에게 받은 ①스마트워치를 눌렀지만 위치추적 오류로 경찰은 사건현장으로부터 500m 떨어진 엉뚱한 곳으로 출동했다.

A씨는 이날 "스마트워치가 차라리 지급이 안 됐더라면 언니가 휴대폰 긴급구조신호(SOS)로 정확한 위치를 알릴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한탄했다. 앞서 9일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를 집에 두고 와 휴대폰 SOS 기능을 사용했을 땐, 친구들에게 피해자의 정확한 위치가 찍힌 문자와 로드뷰가 발송됐다고 한다. 당시 살해 협박을 받고 있었던 피해자는 그 덕분에 김씨와 분리될 수 있었다.

그는 "경찰은 이제 와서 스마트워치를 점검하고 대응 훈련을 한다""'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대응은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 증거 요구하거나 스토킹 목격해도 '단순 경고'만

한국일보

서울경찰청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병찬(35)의 신상정보를 24일 공개했다. 경찰청 제공


A씨는 ②경찰이 증거를 요구하며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언니가 수차례 신고했는데 같이 있을 때는 증거를 남겨 놓을 수 없잖나"라며 "그런데 경찰은 증거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거나, 어떤 경찰은 '협박이 맞나'고 물어보기까지 했다더라"고 전했다.

심지어 피해자가 서울로 직장을 옮기기 전 부산 경찰에 김씨를 최초 신고했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그 기록에는 김씨가 '목숨을 빼앗겠다'고 위협하다가, '그만하겠다'고 하다가, '협박 안 하겠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웃었다고 나와 있다.

A씨는 "살인범이 언니 휴대폰을 강제로 뺏어서 주고받은 메시지를 다 지웠다"며 "경찰은 살인범과 언니가 같이 있는 증거나 동영상도 원했지만 언니가 살인범과 셀카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나"며 기막혀 했다.

③법원이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을 때도 경찰의 소극적 대응이 계속됐다고 한다. A씨는 "법원이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고 언니가 임시보호소로 거처를 옮길 때 경찰 수사관이 살인범(김씨)이 언니 차에서 자고 있는 걸 봤다""그런데도 경찰은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만 하고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휴대폰으로 친구들에게 SOS를 보냈던 것도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 이후였다.

유족이 "김병찬의 계획적 범죄"라 주장하는 세 가지 이유

한국일보

지난달 29일 오전 제주시 연동의 한 주택에서 열린 신변 보호용 인공지능 폐쇄회로(CC)TV 시연회에서 경찰이 신변보호대상자가 CCTV를 통해 침입자를 확인,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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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김씨의 '우발적 살해' 주장에도 적극 반박했다. 김씨는 '스마트워치에서 나오는 경찰의 목소리를 듣고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그러나 "①김씨가 서울에 올라온 18일 흉기와 모자를 구매했고, ②언니 차가 주차돼 있는 걸 확인한 뒤 언니가 집에서 나오길 기다렸다가 여러 차례 찔러서 살해했다"고 정황 증거를 들었다.

그 밖에도 김씨가 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한 것, 범행 후 피해자 휴대폰을 강남 한복판에 버리고 자신의 휴대폰은 추적이 어려운 비행기 모드로 전환한 것,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구로 도주한 점 등을 들며 ③그가 증거를 인멸하고 위치 추적에도 대비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대구에서 혀를 깨물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데엔 "생명에 지장이 없는 정도로 안다"며 "(우발적 살해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유족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은 국민청원 통해 호소하는 것뿐"

한국일보

김병찬에게 스토킹을 당하다 살해된 피해자의 유족이 24일 '김씨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부실 대응한 경찰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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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만약 우발적 범죄로 인정되면 김씨가 사회에 빨리 나오게 될 것"이라며 "그럼 저희 가족은 다시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경찰에 대해서도 "언니는 소극적 대응에도 경찰을 믿었다. 그런데 결국 저희에게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A씨는 마지막으로 피해자의 동생이자 자신의 오빠가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많은 관심을 바랐다. 그는 국민에게 많은 동의를 받아 사건이 널리 알려지는 것만이 유족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라고 말했다.

24일 올린 청원에서 유족들은 ①김씨에게 사형을 선고하거나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해야 하고 ②경찰 부실대응의 책임자를 규명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③스토킹 피해자 보호 체계 개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빠른 시일 내에 공표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청원은 26일 오전 11시 현재 2만2,000여 명의 청원 동의 인원을 모았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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