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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성립 원인은 날씨"…고기후로 해석한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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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기후의 힘' 발간

"송국리 문화 일본 전파 배경도 기후…온난화는 발전 걸림돌"

연합뉴스

몽골 울란바토르 인근 지역 풍경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아메리카 대륙에서 꽃핀 마야문명은 극심한 가뭄으로 붕괴했다고 널리 알려졌다. 기후는 다른 주요한 문명이 쇠퇴한 이유를 논할 때도 자주 언급된다. 급격한 기온 상승과 하강, 화산 폭발, 지진은 예부터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였다.

기후가 문명 성쇠에 지대한 결정을 미친다는 주장은 지리학계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후보다 인간의 능력을 우선시하는 견해가 힘을 얻었다.

고기후와 고생태를 연구하는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신간 '기후의 힘'에서 다시 기후에 주목한다. 축적된 연구 성과를 보면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에 닥친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는다.

저자는 풍부한 기후학 지식을 바탕으로 약 2만 년간 지구 환경이 변화한 과정을 설명하고,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을 기후라는 틀로 해석한다.

일례가 고려와 몽골이 1231년부터 1259년까지 싸운 여몽전쟁이다. 저자는 몽골제국이 성립될 즈음 가뭄이 심해 군대가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기존의 학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칭기즈칸의 정복 전쟁이 집중된 13세기 초는 지난 1천 년을 놓고 봤을 때 몽골 지역 강수량이 가장 많던 시기"라며 "초원의 생산성은 최고에 달했고, 말을 먹일 풀도 흔했다"고 설명한다.

반면 고려는 당시 비가 많이 오지 않아 기근이 자주 발생했다. 태양 흑점 수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1260∼1340년에 감소했고, 지구 전체가 기후변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저자는 "고려에서는 가뭄과 기근으로 많은 백성이 빈궁한 삶을 견뎌내야 했으며, 불안정한 정치는 상황을 악화했다"며 "고려는 물리적 전력이 몽골에 비해 현격히 부족했지만, 가뭄마저 싸울 사기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태양 흑점이 줄어드는 극소기는 1790∼1830년에도 찾아왔다. 북반구 기온은 1720년부터 비교적 높다가 1800년을 기점으로 낮아졌다.

조선사에서 1800년은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인 순조가 즉위한 해다. 1811년에는 평안도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다.

저자는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고, 이듬해 조선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며 "순조가 아버지 정조와 달리 무기력한 군주로 평가받는 이면에는 기후변화라는 피할 수 없는 저주가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추정한다.

선사시대 문화 흐름도 기후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는 청동기시대 흔적인 부여 송국리 유적을 만든 세력이 단기간에 소멸한 원인도 기후라고 본다. 광양 꽃가루 자료를 연구하면 약 2천800년 전에 '2.8ka 이벤트'라는 갑작스러운 단기 가뭄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이 무렵 한반도의 주거지 수도 크게 줄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3천 년 전 금강 유역에 송국리 문화를 일군 사람들이 가뭄 때문에 전라도와 경상도로 이주했고, 일부는 바다를 건너 규슈에서 야요이 시대를 열었다고 추측한다.

그러면서 "야요이 시대는 2천800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중론이고, 유전자 분석 결과를 봐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분리되는 시점은 대략 2천800년 전"이라며 "갑작스러운 기후변화 충격으로 한반도의 농경민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가설과 잘 들어맞는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저자는 국내 고고학계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이어진 '소로리 볍씨'와 '흥수아이'도 고기후의 관점으로 고찰한다. 소로리 볍씨는 1만5천 년 전의 세계 최고(最古) 볍씨, 흥수아이는 구석기시대 어린이 화석으로 각각 알려졌다. 출토지는 모두 청주다.

저자는 "볍씨가 발견된 곳에서 벼의 다른 잔재가 확인되지 않았고, 1만5천 년 전에는 한반도에서 야생 벼가 자랄 수 없었다"고 강조한다.

흥수아이에 대해서는 "화석이라기보다 인골에 가까운데, 인골이 화석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4만 년을 버텼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고 짚는다.

책 제목처럼 시종일관 '기후의 힘'을 역설한 저자는 미래에도 기후는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이며, 온난화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후변화는 인류 발전을 저해한 걸림돌이었다"며 "지구 온난화라는 걸림돌을 차근차근 치워 나가지 않으면 우회로까지 막혀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바다출판사. 35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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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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