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여사가 28일 빈소를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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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이는 정치·인생 역정을 함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닌 그의 부인 이순자 여사였다.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3일째인 28일 이 여사는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으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조문 후 “5·18 유족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는가” “유족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가” 등 취재진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28일 빈소를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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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빈소에 도착한 이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 등과 1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총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임재길 전 수석은 기자들과 만나 “이 여사께선 ‘전 전 대통령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 함께 못 왔다, 죄송하다’고 말씀하셨다”며 “영부인(김 여사)과는 오랫동안 같이 여러 가지 일을 하셨기 때문에 옛날이야기를 하시고 건강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전했다. “두 분에게는 (남편이) 군 생활할 때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전 대통령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을 진단받고 치료 중이다.
구자열 무역협회장이 28일 빈소를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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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는 이날 오전 11시40분쯤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부축을 받으며 빈소에 왔다. 김 여사는 이날 이 여사를 비롯한 정·재계 인사의 조문을 직접 받으며 4시간 30분가량 빈소를 지킨 뒤 입관식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노 전 대통령의 입관식은 유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천주교식으로 진행됐다. 2006년 병상의 노 전 대통령에게 세례를 했던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가 마지막 기도를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8일 빈소를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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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조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는 “김 전 대통령과 더불어 정치 발전과 민주화 이행에 결정적 역할을 하신 분”이라며 “87년 체제도 6·29선언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고, 1990년 3당 합당 등 온건 군부세력의 대표인 노 전 대통령과 온건 민주화세력 김 전 대통령 두 분의 대타협이 없었다면 민주화 이행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더 이상 용서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는 내용의 방명록을 남겼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28일 빈소를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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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구자열 LS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김장환 목사 등의 조문도 이어졌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28일 빈소를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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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은 외교계 인사들이 고인의 외교 업적을 기리는 장면이 잦았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한·중 수교와 대만 단교를 결단한 업적은 지금도 양국 국민에게 의의를 갖고 있다”며 “대사가 된 후 한·중 수교일을 즈음해 찾아뵙고 ‘우물 마시는 사람은 우물 판 분 잊지 않는다’고 했더니 (공감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2년 한·중 수교를 이뤄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도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운데)가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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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빈소는 30일까지 운영된다. 유족 측은 장지로 파주 통일동산 내 후보지를 살펴본 뒤 행정안전부와 논의를 거쳐 세부 위치를 결정할 예정이다. 후보지로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조성했던 파주 동화경모공원 등이 거론된다. 묘지 조성 전까지는 파주 사찰인 검단사에 임시 안치할 예정이다.
한편 행안부는 28일 노 전 대통령 국가장 장례위원회(위원장 김부겸 국무총리) 구성을 마쳤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고려해 총 353명의 장례위원으로 구성됐다.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장례위원회(2222명)의 6분의 1 규모다.
이날 오전 9시부터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 시민들이 조문할 수 있는 분향소도 차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첫 조문객으로 분향소를 찾아 방명록에 “평안히 영면하소서”라는 글을 남겼다.
■ 영전에 바치는 질경이 꽃 하나의 의미
남들이 고인의 영전에
국화 한송이 바칠 때에
용서하세요. 질경이 꽃 하나
캐다 올리겠나이다.
하필 마찻길 바퀴자국난
굳은 땅 골라서 뿌리내리고
꽃 피운다하여 차화(車花)라고도
부르는 잡초입니다.
독재와 독선, 역사의
두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 밑에서
어렵게 피어난 질긴
질경이 꽃 모습을 그려봅니다.
남들이 서쪽으로 난
편하고 따듯한 길 찾아 다닐 때
북녘 차거운 바람 미끄러운
얼음 위에 오솔길 내시고
남들이 색깔이 다른 차일을
치고 잔칫상을 벌일 때
보통 사람과 함께
손 잡고 가자고 사릿문 여시고
남들이 부국강병에 골몰하여
버려 둔 황야에
세든 문화의 집 따로
한 채 만들어 세우시고
이어령 |
이제 정상의 영욕을
역사의 길목에 묻고 가셨습니다.
어느 맑게 개인날 망각에서
깨어난 질경이 꽃 하나
남들이 모르는 참용기의 뜻,
참아라 용서하라 기다려라
낮은 음자리표 바람소리로
전하고 갈 것입니다.
-2021년 10월 28일 이어령
성지원·최서인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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