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5·18 등 책임…시민정서 감안 결정
행안부 “조기 안 걸어도 벌칙 조항 없어”
지역 시민단체들, 잇단 국가장 비판 성명
정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고 있지만 광주시는 28일 조기를 게양하지 않고 분향소도 설치하지 않았다. 전국 상당수의 지자체는 조기와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았다. 광주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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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26일 89세를 일기로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고 있지만, 전국 상당수의 지자체가 조기를 게양하지 않거나 별도의 분향소를 마련하지 않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정부의 국가장 결정을 사실상 따르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90)가 사망할 경우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2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17개 특·광역자치단체중에서 광주시와 전남도, 전북도, 세종시가 조기를 게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들 지자체들은 별도의 분향소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광주시 5개 구청과 전남지역 22개 시·군, 전북지역 14 시·군도 조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울산시와 강원도, 충남도, 충북도, 경남도는 조기는 게양했지만 분향소는 마련하지 않았다. ‘국가장법’에는 국가장 기간 동안 조기를 게양하도록 하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와 재외공관은 분향소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국가장 기간 조기를 게양해야 하지만 이를 어길 때 벌칙 조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정부의 국가장을 사실상 따르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9년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과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 했을 때 지방자치단체들은 모두 조기를 게양하고 분향소도 마련했다.
조기를 게양하지 않은 지자체들은 노 전 대통령이 12·12군사반란의 주역인 점과 5·18민주화운동 학살 책임이 있는 만큼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할 때 국가장을 따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한 정부 결정을 존중하지만, 광주에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다하고 오월 영령과 광주시민의 뜻을 받들어 조기 게양 및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남도 역시 “5·18 피해자 분들과 도민 정서 등을 감안해 조기를 게양하지 않고 분향소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울산시는 “행정안전부의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자율적으로 분향소 설치여부를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국가장 결정을 비판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대구·경북 30개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정당 등이 연대한 ‘1991년 열사투쟁 30주년 기념사업 대구경북준비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노씨는 12·12군사쿠데타의 주범이고 5·18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또 1991년 경찰폭력으로 대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도 모자라 유서대필, 분신배후 등의 사건을 조작하고 방조했다”면서 “노씨에 대한 국가장 예우는 국민통합이 아닌 국론분열 행위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등 범죄자들에 대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며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강원 원주시민연대도 “정부의 국가장 결정은 광주 민중항쟁을 짓밟은 책임자에게 온정을 베푸는 행위로, 사회정의를 무색하게 하고, 국가기강을 문란 시키는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노씨는 대통령이기 전에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하고, 군대를 동원해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반란의 수괴”라면서 “노씨의 국가장은 5·18의 진실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 의지에 반하는 것이며, 학살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밝혔다.
5·18 관련 단체들은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또 한 명의 5·18학살 책임자인 전씨가 사망할 경우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정부가 노씨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결정하면서 현행법대로라면 전두환씨도 사망할 경우 국가장이 가능하다”면서 “더 이상 국민적 혼란을 초래하지 않도록 국가장법을 개정해 불합리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석·백승목·윤희일·최승현·김기범·박용근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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