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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대통령, 美·獨 등 10국 대사에 “본국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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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국가와 터키의 관계 더 악화되나

조선일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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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미국 등 터키 주재 서방 10국 대사에 대해 사실상 추방 조치를 했다. 터키 반정부 인사에 대한 석방 요구를 했다는 이유다. 인권과 외교 문제로 사사건건 부딪쳐 온 터키와 서방 국가 간의 ‘불편한 관계’가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터키 주재 10국 대사를 “가능한 한 빨리 ‘페르소나 논그라타(Persona non grata)’로 지정하라”고 외교부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터키 아나돌루통신이 보도했다.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뉴질랜드 대사가 그 대상이다. 페르소나 논그라타는 ‘환영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재국에서 기피하는 인물을 뜻하는 외교 용어다. 1961년 빈 협약으로 주재국에서 페르소나 논그라타로 지정된 외교관은 파견하지 않고, 이미 파견된 때는 소환하도록 되어 있다. 영국 BBC와 프랑스 일간 레제코 등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사실상 추방을 지시한 것”이라며 “(서방 국가와) 급격한 관계 악화로 인한 터키 경제 타격이 우려된다”고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는 지난 18일 이들 10국 대사가 공동 성명을 통해 터키 반정부 인사 오스만 카발라의 석방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카발라는 환경운동가 출신으로, 2013년 이스탄불 도심의 공원을 파괴하는 쇼핑센터 건립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했다가 이 시위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지면서 2017년 구속 기소됐다. 지난 2월, 수감 4년여 만에 이스탄불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지만, 교도소 문을 나서자마자 2016년 쿠데타 시도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다시 구속됐다.

10국 대사들은 “에르도안 정부가 자국 국민의 인권을 소홀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러나 “(10국 대사가) 내정 간섭을 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반드시 터키를 이해해야 하며, 그러지 못하겠다면 터키를 떠나야 한다”고 반박했다. 에르도안은 지난 2월 카발라를 재수감하면서 “카발라는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와 연관이 있으며, (그의 사주를 받아) 시위를 일으키는 등 국가와 국민을 겨냥한 극악한 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조치로 에르도안 정권과 서방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의 EU(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는 한편, 러시아와 밀착해 신종 코로나 이후 위기에 빠진 터키 경제를 되살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권력 강화를 위해 야당과 언론을 탄압해 서방의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 왔다. ‘등거리 외교’를 빙자한 EU와 러시아 사이 양다리 외교도 서방의 불만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일로 미국·유럽과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 회복과 통화 안정을 이루려는 터키 정부의 노력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르도안은 서구 사회로부터 ‘아나톨리아(터키의 지명)의 술탄(이슬람 국가의 군주)’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2003년 총리로 처음 정권을 잡은 이래 18년째 장기 집권하면서 독재 체제를 구축해서다. 2010년 총리의 4연임을 금지한 헌법을 개정해 5년 임기의 직선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201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7년 개헌을 통해 2033년까지 집권이 가능한 체제를 만들면서 사실상 입법·사법·행정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대통령이 의회 해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어 의회를 무력화했고, 고위 법관 임면권도 가져갔다. 지난 3월엔 경기 부양을 위한 기준 금리 인하에 반대하는 중앙은행 총재를 마음대로 경질해 리라화 가치가 장중 17%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에르도안은 터키 건국과 근대화의 아버지인 케말 파샤의 개혁 이래 지켜온 정교분리 원칙의 세속주의도 깼다.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이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기 위해서 쓰는 두건)을 착용하도록 했고, 학교에서 이슬람 교육을 강화했다.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이슬람 보수주의자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다. 그는 2023년 대선에 또 출마할 계획이다. 다만 터키의 경제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인권 상황도 악화하면서 에르도안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 변수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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