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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너도나도 “ESG 경영”…보여주기식·그들만의 리그 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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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내 10대 그룹의 상장사 99곳 중 68곳이 ESG위원회 설치 ‘열풍’
기존 이사회 사외이사 구성과 별 차이 없어 ‘간판 바꿔달기’ 지적
중기 90% “도입 여력 없어”…‘모범 기업’으로 이미지 세탁 우려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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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수익으로만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전 세계 경제·산업계의 위기 의식이 심화되며 ‘ESG’가 투자자들의 강력한 기업 평가 기준으로 떠올랐다.

ESG는 환경 보호(Environment), 사회적 책임(Society),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기업의 사회 기여와 지속 가능성 달성을 위한 비재무적 성과를 의미한다.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이미 발 빠르게 대응해 ESG를 새로운 성장동력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SK, 현대차, 한화, LG 등 주요 대기업들이 ESG 경영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지난달 기준 국내 10대 그룹 상장사 99곳 중 ESG위원회가 설치된 곳은 68곳으로 70%에 달한다. 주요 대기업이 재계의 ESG 확산을 이끌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ESG 경영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뒤따른다.

■ 보여주기식 ESG위원회

ESG위원회는 기업의 경영 활동을 감시하고 주요 의사결정을 이끄는 역할을 수행한다. 위원회 구성에 ESG 경영 전문가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외부 인사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기존 조직에 ‘간판’만 바꿔 달거나 인력도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 기업들이 ESG에 대한 개념과 명확한 기준, 구체적 실행 계획 없이 ESG 간판을 붙인 ‘조직’ 만들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6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51개사 ESG위원회 구성원들을 조사한 결과 ‘교수’ ‘60대’ ‘남성’이 주를 이뤘다. 각 기업 ESG위원회 구성원 207명 중 경력 사항 기준으로 교수직이 40.1%(83명)로 가장 많았고, 기업인(33.3%), 고위공직자(11.6%), 법조인(8.7%) 등의 순이었다. 위원들의 연령대는 60대가 50.2%로 절반을 넘었다. 50대 38.2%, 장년층은 88.4%였다. 성별은 남성 비율이 압도적이다. 전체 207명 중 남성이 181명으로 87.4%를 차지했다. 여성 26명(12.6%)과 비교하면 9 대 1 비율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요 기업들이 ESG 이름을 달고 그룹 최고위 의사결정기구를 신설하고 있지만 기존 이사회의 사외이사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니 환경이나 사회, 지배구조 관점에서 얼마나 차별화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적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기존의 경영 전략과 ESG 전략을 통합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 기업들이 만들고 있는 ESG 조직으로는 그러한 과정까지 가지 못하고 있다”며 “외부에서 보다 독립적인 관점으로 기존 경영의 틀을 깨줄 수 있는 인력를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대기업만의 리그, 중소기업엔 부담

국내 산업계에 불고 있는 ESG 바람이 일부 대기업에 국한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ESG 경영이 투자 유치, 수주·납품, 마케팅 등 기업활동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자금과 인력 부족으로 ESG 전담 조직을 갖출 여력이 없는 중견·중소기업들은 ESG 경영 추진은커녕 협력도 버거운 실정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3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ESG 애로 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 10곳 중 9곳은 ESG 경영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 중 53.3%는 ‘ESG 경영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나, 실제 도입 환경에 대해선 ‘준비돼 있지 않아(전혀+거의) 어렵다’고 느끼는 기업이 89.4%에 달했다. ESG 평가를 요구받은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들(12.0%)은 ‘대기업으로부터 요구’받은 경우가 77.8%로 가장 많았다. 평가를 요구한 거래처의 지원은 ‘전혀 없다’(52.8%)거나 ‘약간의 지원은 하고 있으나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30.6%)란 응답이 많았다.

일부 대기업은 협력사의 ESG 수준이 미달하면 거래를 정지하는 등 ESG 평가가 실제 거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중소기업의 ESG 경영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들만의 ESG 경영이 오히려 국내 기업 생태계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기업이나 공급망 내 상위 기업이 ESG 강화를 선언하더라도 협력업체의 사업 현장에서 ESG 경영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양찬회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중소기업이 ESG 경영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K-ESG’ 지표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거래 지표를 세분화해야 한다”며 “대기업은 협력사에 대한 일방적 평가가 아닌, ESG 도입 및 탄소중립 추진을 위한 설비 구축 등 상생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ESG 워싱’ 감시해야

ESG가 기업들의 마케팅 도구로 활용되는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부적절한 경영승계와 오너 리스크, 회사 자산의 사적 유용, 일감 몰아주기 등 국내 ‘재벌’ 대기업들의 지배구조와 경영윤리가 여전히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SG가 모범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국내 ESG 경영 선두에 있는 SK그룹의 경우 SK실트론 총수의 총수익스와프(TRS) 문제, 친·인척 관련 회사 구내 급식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이 부실하거나 부도덕한데도 ESG 경영을 내세워 면죄부를 받으려는 ‘ESG 워싱(위장 ESG)’ 사례가 많다”며 “ESG가 본연의 ‘지속 가능성’이 아니라 ‘위기 모면용’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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