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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비리 백화점 공군 법무실…부실수사·횡령·기밀유출에 성희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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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실 때문에 공군 전체가 욕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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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계룡대 공군본부 정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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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와 공군 지휘부가 공군 법무실(실장 전익수 준장)의 거듭되는 군기 논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상관에 의한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 사건 부실 수사 책임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데다, 과거 법무관들의 수당 횡령, 근무 태도 불량 논란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올 국감에선 여성 중령에 의한 남성 군무원 성희롱 논란까지 도마에 올랐다. 공군에선 “법무실 때문에 공군 전체가 ‘부패한 적폐 집단’으로 낙인 찍히고 있다”는 불만까지 터져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수사 지휘부 불기소, 이중사父 “피눈물 난다”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 7일 공군 이모 중사 사망 사건 관련자 15명을 기소했다. 그러나 초동 수사 부실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던 전 실장 등 공군 지휘부는 1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반면 이 중사 국선 변호인 이모 중위, 성폭력 신고 접수 시 개요 보고를 하지 않아 직무 유기 지적을 받은 이갑숙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장은 불구속 기소됐다. 군 안팎에선 “국방부 검찰단이 같은 법무 병과 유력자들은 불기소하고 힘 없는 깃털만 기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중사 부친은 “초동 수사를 맡았던 사람 중 기소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면서 “대통령 말만 믿고 신뢰하며 지켜봤는데, 피눈물이 난다”고 했다.

공군 법무실 기강 논란은 이 중사 사망을 초래한 부실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공군 법무실 소속이었던 한 법무관이 7개월 동안 19일밖에 제대로 출근하지 않고 무단 결근하거나, 지각, 허위 출장 등을 일삼아왔다는 사실이 지난 4월 법원 판결로 알려졌다. 그러나 관련 징계는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그는 징계위원회 출석을 거부하며 돌연 병원에 입원했고, 군인 신분임에도 로펌에 지원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결국 그는 8월 말 전역, 현재 민간 개업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이 과정에서 전 실장 등 지휘부가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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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고(故) 이 모 중사의 부친 A씨가 7일 오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 중사 추모소에서 국방부의 최종수사 결과가 담긴 보도자료를 구기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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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간 19일 출근 법무관에 수당 횡령까지

지난해 5월엔 공군 법무관들이 출퇴근 시간을 상습적으로 어기거나 근무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등 무단 이탈 사실이 드러나 국방부 감찰을 받았다. 일부 법무관은 2년(2018~2019년)간 200회 넘게 출퇴근 규정을 어긴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관들이 일과 중 등산이나 PC방을 갔다는 증언도 있다. 심지어 법무관들은 군인 기초 소양인 사격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이 지난해 9월 각 군에서 제출받은 ‘군 법무관 사격 훈련’ 자료에 따르면, 군사법원 소속 육해공군 법무관들은 지난 5년간 단 한 차례 사격 훈련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수사활동수당을 수년간 떼먹은 공군 법무관 등이 집단으로 국방부 감사관실에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에 따르면, 국방부 감사관실은 공군본부 소속 법무관 등 23명이 월 22만원 검찰수사활동수당을 부당 수령한다는 제보를 받고 감사에 착수했다. 법무관뿐 아니라 군무원 등 직원들 역시 업무 수행 없이 검찰수사활동비를 받아왔다고 윤 의원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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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으로 붐비는 서울 북한산 백운대. 실제 일부 법무관들은 근무 시간 중 등산을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조선일보DB


◇로펌 취업하려 군사 기밀 유출도

그러나 국방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국방부 기금운용지침에는 수당관련 업무의 실제 수요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검찰수사활동비 등 수당을 지급할 수 없게 돼 있다. 국방부 훈령엔 200만원 이상 횡령이 발생하면 고발 조치를 하게 돼 있다. 하지만 당시 국방부는 “공군본부 검찰수사활동비 지급 기준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만 하고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수당 횡령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역 후 대형 로펌에 취업하려고 군사 기밀을 유출한 공군 법무관이 파면되는 사건도 지난해 발생했다. 이 법무관은 2018년 직무 상 비밀이 포함된 ‘국방 분야 사업계획서’ 등을 작성, 수 차례 한 로펌 변호사들에게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고고도·중고도 무인정찰기 대대 창설과 관련한 수용시설 공사 사항, 공군·민간업체 간 전투기 유지 보수 관련 분쟁 최종 합의 금액, 훈련기 사고 배상에 대해 공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 등의 자료도 유출됐다. 그는 전역 후 해당 로펌에 취업하기 위해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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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흉근을 발달시키는 벤치프레스를 시연하는 헬스 트레이너.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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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중령, 男부하에 “가슴 너무 크다”

공군 법무실 핵심 보직을 맡고 있던 여성 중령(40대)은 최근 부하 남성 9급 군무원(30대)를 성희롱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해당 중령은 지난해 여름, 헬스가 취미인 부하 군무원의 대흉근이 발달한 모습을 보고 “요즘 모유 수유 하냐. 가슴이 왜 그렇게 크냐”고 말한 혐의를 받았다. 또 해당 군무원이 육아 휴직 중인데도 사전 고지 없이 사무실 자리를 철거하고 업무 분장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거나, 공개된 장소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망신을 준 ‘직장 내 괴롭힘’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았다.

해당 중령은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지난 14일 공군본부 국정감사에서 해당 중령이 진급을 앞두고 있었던 점 등을 언급하며 허위 신고 여부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당부하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 국감에서 제기됐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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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인 KF-16 조종사. 공군 조종사들은 생명을 걸고 작전하지만 공군 법무관 수당은 이들 조종사들의 위험수당보다도 파격적으로 많다./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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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 봐도 경례 안하는 대위 법무관

공군 안팎에선 온갖 논란이 끊이지 않는 법무실에 대해 “전투 병과 군인들이 있는 조직이었다면 10번, 20번은 해체되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법 지식을 내세워 일반 군인들 위에 군림하려는 특권 의식이 만연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조차 7개월간 19일간 출근한 법무관 재판 판결문(지난 4월)에서 “A씨가 속해 있던 법무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기강이 해이했던 사정도 A씨의 비위 행위가 장기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정도였다.

실제 법무관들은 계급이 대위만 돼도 대령에게도 거수 경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누리는 특권도 일반 장교들보다 훨씬 크다. 본봉 35%가량이 수당으로 지급된다. 로스쿨을 졸업한 대위 법무관 1호봉이 5000만원 안팎이다. 생명을 걸고 작전하는 조종사나 잠수근무자보다 많다. 본봉이 올라가면 수당도 계속 늘어난다. 생명을 걸고 근무하는 잠수함이나 전투기 조종사는 물론, 군의관보다도 파격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군 법무관 대위 1~6호봉 수당이 84만~106만여원, 영관급은 110만~210만여원을 받는다. 반면 잠수함이나 전투기 조종사 수당은 영관급이라 해도 70만~100만여원에 불과하다. 일반 장교가 22년가량 근무해야 진급할 수 있는 대령 계급도 법무관들은 15년이면 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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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량 적은데 장군 자리만 늘려

군사법원법 개정에 따라 군내 범죄 사건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성범죄, 사망 사건, 입대 전 범죄 등이 민간 법원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그런데도 법무 병과만 사실상 유일하게 편제에서 장성 정원을 늘린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가 지난 5일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현 법무병과 장군 편제는 고등군사법원장과 육군 법무실장 2명이다. 그런데 지난해 본래 대령급 직위였던 공군 법무실장을 장군으로 진급시키면서 장군 정원이 3명으로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국방개혁 2.0′에 따라 국방부는 장성 정원을 2017년 436명에서 내년 기준 360명까지 76명 감축할 예정이다.

문제는 군 판사, 검사 등 법무관의 업무량은 장군 자리를 늘릴 만큼 과중하기는커녕 오히려 민간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이 국방부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군 판사 1인당 판결 건수는 98건, 군 검사 수사 건수는66건이었다. 반면 민간 법관은 525건, 민간 검찰은 1839건으로 군 판·검사보다 각각 5.4배, 28배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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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시대 변화 따라 혜택 과감히 줄여야”

업무량은 민간에 비해 턱없이 적은데도 “군 법무관의 봉급과 그 밖의 보수는 법관 및 검사의 예에 준해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군법무관임용법에 따라 본봉이 오르는 만큼 35% 수당을 챙겨간다는 것이다. 강대식 의원은 “해당 법률이 개정된 2001년과 현재 상황이 다르다”며 “법률가 수요·공급 구조와 대우 기준 자체가 바뀌었다”고 했다. 실제 공군 법무실엔 명예훼손 성립 요건 같은 초보적 법리마저 제대로 모르는 법무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군사법원법 개정에 따라 성범죄, 사망 사건 등 재판 관할권은 모두 민간으로 이관된다. 고등군사법원 역시 폐지, 항소심은 서울고등법원에서 맡는다. 군 법무 조직의 업무 부담도 상당 부분 줄어들 전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과도한 수당, 진급 혜택 등을 과감히 축소하고 장군 진급 정원을 아예 없애는 한편, 영관급 보직도 3분의 1로 줄여야 ‘공군 법무실 스캔들’ 같은 불미스러운 사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원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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