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12일 오전 기준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한 보통 휘발유 가격은 1683.84원을 기록했다. 하루 전보다 3.71원 오르며 1700원에 바짝 다가섰다. 2018년 11월 5일(1690.3원) 이후 3년 만에 최고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5월 1200원대로 내려앉았던 휘발유 값은 1년 반도 채 지나기 전 30% 넘게 올랐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상대적으로 물가가 비싼 서울(11일 기준 1765.51원), 제주(1712.01원) 지역 휘발유 값은 이미 1700원 선을 넘어섰다. 가장 비싼 곳은 서울 중구의 한 주유소로, 일반 휘발유를 L당 2577원에 판매 중이다. 고급 휘발유도 전국 평균 가격이 L당 1948.26원으로 2000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자동차용 경유, 실내 등유 등 다른 석유제품 가격도 3년래 최고 기록을 연일 경신하는 중이다.
추가 상승은 기정사실이다. 휘발유ㆍ경유 같은 석유제품의 원재료인 원유 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서다. 오피넷 통계를 보면 11일(현지시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80.52달러에 거래됐다. 2014년 10월 이후 7년 만에 80달러 선을 뚫었다. 중동산 두바이유(82.03달러), 북해산 브렌트유(83.65달러) 값은 이미 80달러 위다.
유가 상승 기세가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값을 더 끌어올릴 요인만 한가득이다. 우선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고 ▶산유국이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일 때 석유 생산량을 줄이기로 한(감산) 계획을 큰 변화 없이 실행하고 있는 데다 ▶감산 계획만큼 실제 석유 수요가 감소하지도 않았다. 겨울철 에너지 공급 부족 사태 전망까지 나오며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중이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원유 시장이 수요자 우위 시장에서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확실히 바뀌었다는 증거”라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주요국이 온실가스(탄소) 배출 감축, 친환경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면서 유가 상승을 더 부추겼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석탄, 기후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 대체재로 천연가스 수요가 몰린 영향이 컸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사실 공급망과 전력난으로 인한 물가 압력은 중앙은행이 어찌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국제 유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코로나19발(發) 불황에서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채 고물가 위기로 빠져들 수 있다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우려마저 나온다. 이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경제 상황을 두고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선을 긋긴 했지만 한국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다. 석유 등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워낙 높은 데다, 수출 비중이 커 외풍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 경제’ 구조란 점이 한계다. 최근 환율이 크게 널뛰기하고 있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4.2원 내린(원·달러 환율은 상승) 1198.8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75%로 동결한다고 발표하고 난 직후 한때 1200원 선을 뚫고 내려가기도 했다. 원화 값이 장중 1200원 아래로 추락한 건 지난해 7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원화 약세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한국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관세청 집계 결과 이달 1~10일에만 무역에서 24억5600만 달러(약 2조9373억원) 적자를 봤는데, 유가 등 원자재가 상승 영향이 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가가 오르며 물가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원화가 크게 약세를 보이는 현상은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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