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저녁 9시쯤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의 한 카페. 업주 정모씨(43)는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테이블을 닦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흰색 벽 한켠에 놓여진 스크린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방영되고 있었으나 정씨 외에 화면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정씨는 이날 발표된 손실보상안 이야기를 듣자 "그런 말 말라"며 "보상금 받아도 대출·손실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손을 내저었다.
정부가 코로나19(COVID-19) 방역 조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한 손실을 최대 1억원의 범위에서 80% 보상하는 방안을 발표했으나 일부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손실 보상비율이 100%에 미치지 못하고 상한액이 지정되어 있는데다 대상 업종이 한정되어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자영업자비대위는 보상 방안이 미흡할 경우 대규모 광화문 시위를 예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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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없이 부족한 보상금, 뒤늦게 줘도 의미없어…깊어지는 자영업자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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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인 8일 저녁 서울 광진구 군자역 식당가 인근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 = 오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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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의결한 3분기 손실보상 기준에 따르면 코로나 발생 이전인 2019년 대비 올해 동월 일 평균 손실액에 보정률 80%를 적용해 손실보상금을 산정한다. 적용 대상은 소상공인과 소기업으로, 최소 10만원부터 최고 1억원 범위 내에서 보상금이 지급된다. 오는 27일부터 신청을 받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지급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주들은 보상안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날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군자역, 마포구 홍대입구역, 신촌역 인근 번화가의 가게 10여곳을 돌아본 결과 손실보상안이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1억원의 보상 한도액이 이미 발생한 영업손실에 턱없이 부족한데다 보상 대상이 집합금지와 영업시간 제한 업종에만 한정된 점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순대국 가게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단순히 계산해 봐도 번화가에 20테이블 정도의 가게가 30평(약 100m²)이라고 가정하면 월 임대료에 인건비, 재료값 등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업소도 많다"며 "지난해부터 1년으로 잡아도 1억원이 훨씬 넘는데 모두 보상 못 받는다는 말 아닌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급이 너무 늦어 이미 '사후약방문'이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광진구 구의역 인근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윤모씨(43)는 "이미 문 닫을 곳 다 닫고 자를 직원 다 자른 가게가 거리마다 넘쳐난다"며 "폐업 업소도 보상해준다지만 이미 문 닫은 업소들이 보상금 받고 다시 문 여는 게 말이 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목숨을 잃은 분들도 계신데 뒤늦게 보상금 받으면 다시 돌아오시나"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최근엔 자영업자들이 영업난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7일에는 마포구에서 20년 넘게 맥줏집을 운영하던 50대 자영업자가 코로나19로 가게 문을 닫으면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달 12일에는 전남 여수에서 치킨집 점주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중기부 손실보상안 발표 직후 논평을 내고 "영업손실분에 대해서 100% 보상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음에도 80%만 보상하게 된 이번 결정에 유감"이라며 "상한액을 정한 것과 인원제한·영업행태 제한 업종을 보상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피해가 발생한 업체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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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 대규모 '광화문 집회' 열리나…"15일 바뀌는 것 없으면 강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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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은 점주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마포의 한 주점 입구에 추모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2021.9.14/사진 =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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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단체들은 정부의 보상안이 자영업자들의 요구에 미치지 못할 경우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해왔다. 지난 7일 새벽부터 서울정부청사 인근 세종로공원에서 무기한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자영업자비대위는 8일 성명을 내고 "만일 100% 손실보상·영업제한 철폐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총궐기하겠다"며 "더 이상 온건하게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위 측은 이날 손실보상안 발표가 미흡한 만큼 오는 15일 거리두기 재조정안을 면밀히 주시하겠다는 방침이다. 만일 15일 조정안에서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손실보상안이 없으면 20일 대규모 단체행동을 연다. 단체행동의 방안으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나 광화문에서 수천명 규모의 촛불집회를 열고 가게마다 비치된 QR코드를 철거하는 등 정부 방역수칙에 전면 반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창호 비대위 공동대표는 "현재로서는 오는 20일 총궐기를 강행할 예정"이라며 "15일 발표를 보고 향후 행동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조지현 비대위 공동대표도 "비대위가 주장하는 영업시간·인원 제한 철폐와 완전한 손실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더욱 강한 반발이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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