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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헌정질서 수호 행위" 5·18 때 광주MBC 불지른 시민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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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980년 5월 항쟁의 최후 결전이 벌어진 직후의 옛 전남도청 모습. 노먼 소프 기자가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내 계엄군과 진압 작전 희생자 모습을 촬영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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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만에 재심서 건조물방화 혐의 무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문화방송 건물에 불을 지른 혐의로 옥살이한 광주시민이 41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방화 자체는 인정되지만, 전두환 등의 헌정 질서 파괴 범죄를 막기 위한 정당행위"라고 판단했다.

광주고법 형사1부(이승철·신용호·김진환 고법판사)는 3일 "계엄법 위반과 현주건조물방화 등의 혐의로 1981년 징역 장기 3년, 단기 2년 6개월이 확정된 고(故) 최모씨의 재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1980년 당시 18세였고, 2009년 사망했다.



특수절도·공동상해 혐의는 유죄 유지



재심 재판부는 계엄법 위반과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지만, 특수절도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상해) 등 혐의는 유죄를 유지했다.

법원에 따르면 최씨는 1980년 5월 18일 오후 9시30분쯤 광주 동구 궁동 광주문화방송 앞에서 군중 수백 명이 "방송국에서 데모 장면을 방송하지 않는다. 불을 질러 없애버려야 한다"고 외치며 시위할 당시 시위대로부터 휘발유 통을 받아 박모씨 등 2명과 함께 함께 방송국 안에서 불을 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아울러 박씨와 함께 1979년 10∼11월 녹음기와 자전거를 훔친 혐의(특수절도), 1980년 10월 시비가 붙은 타인을 폭행한 혐의(공동상해) 등으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중앙일보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하며 목격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후 광주지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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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헌정질서 수호하기 위한 것"



최씨 측은 "내가 불을 낸 것이 아니며, 다른 혐의는 형이 무겁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해 5월 15일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으며, 법원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정한 재심 사유가 있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재심 재판부는 과거 재판 기록 등을 볼 때 최씨의 방화 자체는 인정되지만, 5·18과 관련해 헌정 질서 파괴 범죄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에 해당해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전두환 등이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 이후 비상계엄 확대를 선포하고 1981년 1월 계엄 해제 시까지 행한 행위는 헌정 질서를 파괴한 범죄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행위는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형법 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공범으로 지목된 박씨는 앞서 1998년 재심에서 비슷한 취지로 무죄를 인정받았다. 재판부는 박씨의 무죄 사례와 비교하며 "최씨의 행위 역시 헌법의 존립 및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행위로 봐야 하며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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