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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르포] "문화재 보호" vs "산 사람이 우선" 김포장릉 고층 아파트 두고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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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장릉 앞 20층짜리 건물 골조 들어서

문화재 450m 인근서 아파트 건설…수천 세대 입주 예정

문화재청 "건설사들 심의 안 받았다" 공사 중지 명령

건설사 측 반발…내달 11일 개선 대책 제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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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장릉 위쪽 원종의 능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계양산을 가로막고 있는 건축현장이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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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우리 문화유산인데 당연히 지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죽은 사람 무덤보다는 산 사람이 우선이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기 김포장릉 인근에 세워진 고층 아파트를 두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장릉으로부터 불과 450m 떨어진 지역에 올라간 이 빌딩은 주변 경관을 해치고 문화재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포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일각에선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도, 이미 수천 세대가 입주 예정인 건물을 섣불리 철거할 수는 없다는 반박도 있다.

능 가로막은 20층짜리 아파트…"능 가치 보존해야" vs "입주자 보호해야"

김포장릉은 조선 16대 국왕인 인조의 아버지 원종(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1678~1626)의 무덤이다. 김포 시청 인근, 장릉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원종과 인헌왕후의 무덤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제향공간에 모셔졌다. 마치 하늘을 향해 솟은 듯한 어로를 따라 올라가면, 탁 트인 언덕 위에 각종 석물들의 호위를 받는 두 무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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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과 인헌왕후의 무덤으로 향하는 향로.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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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관람객의 시점으로는 그저 평화로운 풍경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릉이 있는 위쪽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보였던 계양산이 지금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최근 검단 신도시에서 지어지고 있는 20층짜리 아파트 단지다. 왕족의 시야가 방해 받고 있는 꼴이다.

최근 문화재청은 장릉 인근에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는 건설사 3곳을 인천 서부경찰서에 고발, 공사 중지를 명령했다. 심의를 받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공사에 착수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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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를 지나 제향공간에서 위로 올려다 본 능의 모습.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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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장릉에서 만난 70대 시민 최모 씨는 이같은 풍경에 대해 "너무 한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기적으로 장릉을 방문한다는 그는 "단순히 풍경이 훼손된다고 화를 내는 게 아니다. 이 능은 원래부터 산을 바라보도록 만들어진 건데 갑자기 아파트가 들어서서 그 의미를 모두 망쳤다"라면서 "능의 의미가 사라지면 가치도 없어지는 것"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택지를 매각한 시와 건설을 추진한 시공사가 무책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50대 주부 A 씨는 "세계적인 문화재가 김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역의 재산이고 경쟁력인데, 그걸 성급한 개발로 망친 게 아니냐"며 "무턱대고 아파트만 올리지 말고 시민들 복지를 신경 썼으면 좋겠다"라고 꼬집었다.

반면 문화유산보다는 입주민 보호가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시청 인근에서 카페 영업을 하는 50대 B 씨는 "아파트에 입주하기로 예정된 세대가 3400개라고 들었다"라며 "건설이 늦춰지거나 만에 하나 철거되기라도 하면 이미 집 산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죽은 조선 왕이 산 시민 수천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건가. 말이 안 된다"라고 일갈했다.

문화재청, 내달 11일 심의 거쳐 아파트 운명 결정한다

장릉은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특히 김포장릉은 파주에 있는 인조의 능, 그리고 계양산과 일직선으로 정렬된다는 점에서 조상들의 야심 찬 건축 의도가 돋보이는 독특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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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능인 파주 장릉에서 김포 장릉까지 일직선으로 연결된 모습(좌)과 김포 장릉과 검단 신도시 건축 현장 사이 모습. / 사진=네이버 지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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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문화재 인근 난개발로 인해 이런 설계에 '변형'이 가해지면, 장릉이 문화유산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 등재 기준으로 '진정성(authenticity·재질, 기법 등에서 원래 가치를 보유해야 함)'을 꼽기 때문이다.

기존 문화유산이 지위를 박탈당한 사례는 지금까지 총 세 곳으로,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 계곡, 오만 아라비아 오릭스 보호구역, 마지막으로 지난 7월 박탈이 결정된 영국 리버풀 해상상업도시다. 해상상업도시의 경우 리버풀의 거듭된 난개발이 문제가 됐다.

이렇다 보니 문화재청 또한 문화재보호법을 통해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있다. 이번 김포장릉 논란 또한 건설사들이 문화재보호법을 어기고 공사에 착수해 문제가 됐다는 게 문화재청 측의 설명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 반경 500m 내 높이 20m(약 7층) 이상 건물을 지으려면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인천시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택지 허가와는 별개로 어떤 건축물을 짓느냐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아닌 문화재청의 별도 심의를 받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건설사들에게 관련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내달 받을 예정"이라며 "이미 거의 완공된 건물이라 완전 철거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건설사들 대책에 따라 달려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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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장릉 인근에 세워진 세계유산 기념비석.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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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측은 시공에 필요한 절차를 이미 모두 완료했다고 주장했다. 검단 신도시 아파트 건설사 중 하나인 '대광건영' 측은 "저희 입장에서는 주택법, 건축법 등 정상적인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 건축에 착수한 상황에 허가가 누락됐다는 말이 나온 것"이라며 "현재 서울행정법원을 통해 관련 소송을 진행, 행정 처분에 대한 입장을 다투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심정적으로 인정은 안 하지만, 입주자 입장에서 모든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에 문화재청 심의도 함께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과 함께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아파트는 골조 공사가 끝나고 내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내년 입주가 이미 예정돼 있어 입주 예정자들의 중도금 대출도 이미 빠지고 있다. 이 상황에 철거 결정이 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고,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문화재청은 건설사들에게 오는 10월11일까지 '역사문화환경 개선 대책'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 대책은 추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건설 중인 아파트와 관련한 후속 조치 사항이 결정될 방침이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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