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1 (토)

독일 16년 만에 좌향좌, 메르켈 유산 어떻게 바뀌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파이낸셜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라프 숄츠 독일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26일(현지시간) 수도 베를린의 사회민주당(사민당)사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총선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26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치러진 총선 결과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사민당)이 2005년부터 16년 동안 이어진 우파 집권을 끝내고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 다만 득표율 차이가 크지 않은 만큼 연정 및 차기 총리가 확정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27일 독일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299개 선거구에서 진행된 연방 하원 선거의 개표 결과 사민당이 25.7%의 득표율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잠정 투표율은 78.0%로 4년 전 76.2%보다 상승했다.

■16년 만에 정권 교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연합(기민련)·기독사회연합(기사련) 연합은 24.1%의 득표율을 보여 사민당에 1.6% 포인트 차이로 밀렸다. 올해 초에만 해도 지지율이 37%에 달했던 기민·기사 연합은 유례없는 추락 끝에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설립 이후 역대 최악의 선거 결과를 얻었다.

가장 눈에 띄는 원인은 지난 7월 독일 서부를 휩쓸며 180명에 가까운 인명피해를 냈던 홍수였다. 메르켈 정부는 탈원전을 비롯한 친환경 정책을 적극 채용했지만 실행 속도가 매우 느린 상황이었고 경제 위기를 극복하느라 사회기반시설 투자도 소홀했다. 독일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교통과 교육, 통신 등 사회기반시설(인프라) 개선에 4500억유로(약 621조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동시에 16년 동안 이어진 메르켈 정부에 대한 피로감, 메르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도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 80% 이상의 시민이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수도 베를린에서는 최근 급격한 임대료 인상으로 정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유권자들은 메르켈 정부가 연금 체계 개혁이 불가피하다며 고통 분담을 호소하자 연금 수급 연령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사민당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총리 후보도 문제였다. 기민·기사 연합이 차기 총리로 내세운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주지사는 선거 전부터 카리스마와 당 장악력이 메르켈에 비해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라셰트는 지난 7월 수해현장에서 웃는 모습이 포착되어 인기가 급락했다.

■독일 리더십 '엄마'에서 '기계'로?
반면 사민당 총리 후보로 나선 올라프 숄츠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라셰트를 향한 악평과 비례해 메르켈 정부의 노련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쌓을 수 있었다. 노동법 전문 변호사 출신인 그는 1998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함부르크 제1시장을 역임했고 메르켈 정부 1기와 4기에서 각각 노동 사회부 장관,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지냈다.

숄츠는 사민당 출신이지만 당 내에서도 중도에 가까운 인물로 꼽힌다. 별명이 기계일 만큼 카리스마가 없다는 평이 많지만 동시에 성실한 재정관리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우파 계열인 메르켈 정부에 대연정으로 참여해 재정 긴축을 옹호했고 자신이 집권하면 메르켈 정부가 유럽 재정위기 당시 도입했던 정부 지출 제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숄츠는 지난해 세계 최저법인세 도입을 주장하면서 국제적인 이목을 끌었고 코로나19 이후 긴급 구호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내부적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그는 당이 다르지만 '엄마'라는 별명을 가진 메르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그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지난달 현지 잡지 쥐트도이체 자이퉁에는 메르켈의 손동작을 따라한 숄츠의 사진이 실려 기민·기사 연합이 직접 항의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연합(EU)내 역할 확대와 인프라 투자, 최저임금 인상을 내건 숄츠의 공약이 효과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지지율은 5~7월 사이 10% 중반이었으나 8월부터 30% 안팎으로 솟아올랐다.

■연말까지 복잡한 연정 협상
이번 총선에서는 좌우 양대 정당 외에 환경 문제에 집중하는 녹색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독일 여론조사 기관 포어슝스그루페 바렌의 여론 조사 결과 7월 홍수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독일이 직면한 12가지 의제 가운데 기후 변화를 최우선 해결 과제로 지목한 응답자가 43%에 달했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14.8%를 득표해 사상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제3당으로 올라섰고, 자유민주당(자민당)도 11.5%로 4년 전(10.7%)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극우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10.3%를 득표해 4년 전(12.6%)보다 지지율이 떨어졌다. 좌파당은 4.9% 득표에 그쳐 4년 전(9.2%)에 비해 지지율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원외정당으로 밀려났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직을 맡는다. 그러나 사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가장 많은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단독 과반을 이루지 못해 다른 정당과 연정이 불가피하며 협상 과정에서 슐츠가 총리직을 포기할 수도 있다.

독일 안팎의 외신들은 차기 독일 정부가 메르켈 정부처럼 △사민당과 기민·기사 연합의 대연정 △사민당과 녹색·자민당 연정 △기민·기사 연합과 녹색·자민당 연정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에는 연정 협상에 4개월이 걸렸다. 정당들이 협상을 마치고 연정을 출범하기 전까지는 메르켈이 계속 총리직을 맡는다. 숄츠는 선거 결과가 알려지자 "사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다"면서 "유권자들은 내가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같은날 라셰트는 "항상 가장 득표율이 높은 정당이 총리를 배출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기민·기사 연합 주도로 연정을 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