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집없이 결혼도 좋은 학교도 없다" 부동산 목매는 中중산층...헝다 사태 배경됐나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를 살펴보는 주간 연재 코너입니다.
매일경제

헝다그룹의 총부채는 약350조원으로 중국 GDP의 2%에 육박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2위 부동산 재벌 헝다(恒大)그룹 위기가 중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보기술(IT)과 더불어 부동산은 중국 경제를 이끌어온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는데, 둘 다 최근 공동부유론을 내세운 시진핑 정부의 규제 칼끝이 향하는 주요 타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헝다그룹 위기는 "수년에 걸쳐 과열된 중국 부동산 시장의 축소판" 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1996년 중국에서 토지 사용권이 자유롭게 매매되기 시작할 무렵 설립된 헝다는 일찍이 중산층 이하를 대상으로 한 주택을 많이 건설해 왔다. 덕분에 많은 중국인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로 파산할 경우 1차적 피해는 헝다그룹이 시행한 부동산 프로젝트에 투자하거나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지난해 8월 기준 약 8500개로 집계된 건설·인테리어·자재 납품회사 등도 대금을 받지 못해 운영난을 겪고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극도의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헝다그룹이 결국 채권을 상환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근까지 중국 부동산은 장기간 호황을 누리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주택 가격은 33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으며 코로나19 여파에도 평균 8.7% 올랐다. 중국내 규제에 막히자 부유층에 이어 중산층까지 해외 부동산 쇼핑에 열을 올리는 상황도 잇따랐다. 이처럼 중국 중산층까지 부동산 구매에 광분하는 배경을 엔도 호마레(遠藤誉) 중국문제글로벌연구소(GRICI) 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中서 좋은 초등학교 가려면 '부동산 증명서' 있어야

매일경제

중국 닝샤의 초등학교 교실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은 장쩌민 시대부터 리먼쇼크 무렵까지는 당 간부 포함 부유층이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구매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이들이 가격 상승을 부추키는 주 계층 이었다. 하지만 이후 중산층 증가와 맞물려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지금 안 사면 내년엔 절대 이 가격에 살 수 없다"는 식으로 구매 심리를 자극했고 구매층은 중산층으로 확대 됐다. 그런데 엔도 소장은 중국 중산층까지 부동산 광풍에 뛰어든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목적 외에 교육적 목적을 꼽는다. 예를 들어 좋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조차 '부동산 소유 증명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2014년 이전까지는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중학교도 입학시험이 존재했고, 또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학교 측에 뇌물을 주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학교 측은 다소 성적이 부족해도 뇌물로 제공하는 액수가 많으면 이를 감안해 관습처럼 입학을 허가했다.

시험 때문에 뇌물이 오고가는 구조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까지 만연하자 시 주석은 "의무교육 때는 입학시험을 폐지하라"는 통지를 배포했다. 이에 2014년 이후부터는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입학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결정되는 '학구역제(學區域制)'가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의무교육에서 입시는 없어졌지만 입학 심사에 부동산 보유 여부에 따라 입학 순서를 매기는 일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단적으로 올해 '상하이시 자딩구(嘉定區) 의무교육 입학생 모집 실시 의견'이라는 문서를 보면 만 6세 학령기 아동에 있어 '부동산 증명'을 제출한 아이를 우선 입학시켜 사실상 순위를 매겼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도시별로 제1선(대도시), 제2선, 제3선 등으로 구분 짓는 중국에서 1선 또는 2선 도시 정도까지는 이런 상황 이라고 한다. 이렇다 보니 헝다와 중국의 부동산 문제를 살펴볼 때 이 같은 사회구조적 배경도 같이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1자녀 정책 폐해 셩난(剩男) 3500만명…집은 남성의 필수 혼수

매일경제

부동산 급등과 함께 중국의 부동산 대출규모는 최근 10년새 5배이상 급증했다.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이 과거 40년 가까이 유지했던 '1가구 1자녀' 정책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유교문화 잔재가 있는 중국에서 자식을 하나밖에 낳을 수 없게 하니 남아 선호는 매우 두드러졌다. 과거 중국에서 여자 영아가 출산 직후 유기되거나 살해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났던 배경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일이 수십 년 누적된 결과, 지난해 11월 실시된 인구 조사에서 결혼 적령기 중국 남성 수는 여성보다 약 3500만명이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여성 사회학자 리인허(李銀河) 교수는 "2050년이면 35~59세 중국 남성 약 4000만명은 영원히 반려자를 못 찾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짝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있는 남성은 '팔리지 않은 남성'으로 간주돼 '셩난(剩男)'이라고 불린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남성들, 특히 농촌의 '셩난'은 결혼하려면 '혼수품 3가지(三大件)'를 갖춰야 한다. 집·차·지참금(彩禮·차이리) 3가지 혼수 품목 중 가장 어려운 관문은 단연 집이다. 농촌 총각들은 결혼을 위해 자신들의 경제력으론 평생 벌어도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부담을 지곤 한다.

하나뿐인 아들을 결혼시키기 위해 부모들까지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으고 빚을 져서라도 신혼집을 구해가는 풍경은 중국의 중산층과 서민층에서 자주 발견 된다. 게다가 중국 경제가 성장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과거에는 마을에 있는 새 집 정도로 족했다면, 최근에는 현성(현청 소재지 도시)급에서 구해오는 게 기준이 되고 있다고 한다. 기형적 성비로 여자가 귀하다 보니 아직도 이런 전근대적 관습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는 셈이다. 이 같은 사회인구적 배경도 중국의 부동산 광풍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시진핑 주석, 중산층 불만 폭발 가장 우려

매일경제

중국인민은행 통화정책위 위원 판강(樊綱)이 방송에서 "6개의 지갑으로 집을 사라"고 언급했던 모습.[사진=바이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6개의 지갑'(6个钱包) 이라는 말이 있다. 자녀의 부모 2명과 친가와 외가 조부모 각각 2명 등 총 6명의 재산을 합치는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신조어인 이 단어는 지난 2018년 당시 중국 인민은행 통화정책위 위원인 판강(樊綱)이 방송에서 "6개의 지갑으로 집을 사라"고 언급해 유행한 바 있다. 평범한 집안에서 집을 한 채 구매하려면 이 6개의 지갑이 모두 필요하게 된다. 부동산이 워낙 비싸다 보니 중국인들의 6개의 지갑은 대개 부동산 구매에 쓰인다고들 한다.

시진핑 주석이 가장 우려하는 건 이처럼 6개의 지갑을 긁어모아 집을 마련한 중산층의 불만이 폭발하는 것이다. 이들이 관리되지 않으면 중국의 사회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된다. 시 주석은 2017년 전국대표대회 업무보고와 그 이듬해 연이어 "집은 살기 위한 것이다. 투기를 위해 구매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부유층을 중심으로 투기성 부동산 구매는 근절되지 않았다. 만약 헝다그룹이 도산해 손실이 나고 부유층이 큰 손해를 본다고 해도 이것은 시 주석에게 큰 문제거리가 되진 않는다. 이들은 숫자도 상대적으로 적지만 가진 게 많다 보니 분란을 일으키는 일 없이 다른 투자 대상을 물색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산층 이하는 다르다. 엔도 소장은 만약 이번 헝다그룹 사태에 대해 중국 당국이 나선다면 인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부터 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 파격개입 없이 파산 예정된 수순…헝다 운명, 시 주석 손에

매일경제

헝다의 운명은 시진핑 주석의 의중에 달렸다.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 헝다그룹은 만기가 돌아온 위안화 채권이자 지급을 해결했다고 밝혔다. 한 고비 넘긴 듯 했지만 달러 채권 이자는 지급하지 못한 상태로 전해졌다. 게다가 거액의 채무상환 일정이 앞으로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중국 당국이 예상을 뒤엎고 파격적 지원에 나서지 않는 한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인한 파산은 예정된 수순으로 관측된다. 홍콩 밍바오 등 일부 외신은 중국 당국이 헝다 그룹의 핵심인 부동산 사업을 떼어내 국유화 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헝다그룹의 운명은 시 주석 의중에 달린 셈인데 최근 그가 전면에 내세운 공동부유론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빈부 격차의 주범인 부동산을 구원하러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엔도 소장 역시 시 주석이 "헝다를 구제하지 않는다"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 왜냐하면 1년 전 중국 관계 부처가 헝다를 비롯한 부동산 대기업 12개사를 불러 '3가지 기준선'을 제시한 바 있는데, 헝다는 이미 이것을 전부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3가지 기준선은 1. 기업의 자산 부채율을 70% 이내로 하고 2. 순부채비율도 100% 이내로 하며 3. 단기부채보다 많은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시 주석이 헝다를 구제한다면 지침에 예외를 두는 것일 뿐 아니라 자칫 잘못된 신호로 부동산 거품을 더 키울 위험이 있다.

하지만 엔도 소장은 헝다의 파산으로 인한 혼란도 좌시할 수 없기에 시 주석이 헝다가 '갑자기' 파산하게 놔두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앞서 언급했듯 헝다가 파산하면 계약금과 대출금, 이자를 부담하고 있는 중산층 이하 주택 분양자들이 크게 동요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 주석은 내년 베이징 올림픽과 3번째 임기 시작을 앞두고 정치사회적 안정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갈 피해를 최소화하며 장기간에 걸쳐 헝다그룹을 정리해 나갈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헝다는 지난달 19일 인민은행을 비롯한 금융감독기구와의 면담이 이뤄졌고 쉬자인 회장도 퇴진한 상태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130여 차례 금융위기 중 100차례는 부동산 관련이었다. 현재로선 헝다 사태가 글로벌 금융 위기 시나리오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당분간 중국 부동산 업계 위기를 크게 심화시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다음 기사를 빠르고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뉴스 제보나 의견을 메일로 보내주시면 소중히 검토후 차후 꼭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한중일 톺아보기 최근 주요 회차]

-"한국뿐이랴" 전세계 부동산 잠식하는 '차이나 머니'의 공습

-'공산당 리스크'에 주가 '우수수'...서학개미 위기일까 기회일까

-"한국에 G7 일본 자리 뺏긴다?"日경제통 경고에 열도 '들썩'

[신윤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