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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박상욱의 기후 1.5] 유엔 "이대로면 감축 아닌 16% 증가"…곳곳서 쏟아지는 IAEA 보고서 '아전인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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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7)

올해까지 세계 각국은 유엔 기후변화협약에 강화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확정하지 못한, 탄소중립 기본법에 '최소 35% 이상'이라는 문구가 담겼다가 곳곳에서 난리가 난, 바로 그 목표 말입니다. 기후 1.5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해드렸듯, 미국 50~52%(2005년 대비), 영국 68%(1990년 대비) 등 여러 나라가 이미 강화한 목표를 유엔에 제출했고, EU는 1990년 대비 55% 감축이라는 목표를 확정, 이를 위한 각종 제도와 법안까지 마련한 상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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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유엔 기후변화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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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현지시간 17일, 이러한 감축목표에 따른 2030년 지구의 온실가스 현황 전망을 공개했습니다.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처음 평가한지 7개월만입니다. 당시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한국과 일본, 호주 등의 나라를 꼬집어 “2015년에 제출했던 목표를 그대로 제출했다”며 비판하기도 했죠. 글로벌 싱크탱크 PSA의 대표, 모하메드 아도우는 “각국 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미사여구만 보면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 호주, 뉴질랜드 등은 어떠한 행동도 보여주지 않았다”고도 했고요.

관련기사: [박상욱의 기후 1.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67) 유엔 퇴짜 맞은 감축목표…욕속부달, 급할수록 차근차근(하)

이번엔 올해 7월 30일까지 제출된 각 국가별 감축목표에 기반한 계산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아직 '업데이트 전 버전'의 감축목표부터 지난 7월 30일 감축안을 제출한 말레이시아의 따끈따끈한 감축목표(2005년 대비 45% 감축)까지 모두 포함된 것이죠.

#이대로면_감축이_아닌_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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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유엔 기후변화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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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각국의 감축목표들을 종합한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2030년,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0년 대비 16.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유엔은 “최근 IPCC 연구 결과에 비춰볼 때, 이러한 상황이라면 제아무리 감축 노력을 기울여도 이번 세기말 지구 평균기온은 2.7℃ 상승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IPCC가 이야기한 '중배출 시나리오'와 거의 비슷한 상황이 된다는 거죠.

이 정도의 기온 상승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요. 불과 2℃ 증가에 '50년에 한 번 찾아올 법한' 극한 고온은 13.9배, '10년에 한 번 찾아올 가뭄'은 2.4배, '10년에 한 번 경험할 폭우'는 1.7배 늘어납니다. 그럼,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현재로써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모습'으로 꼽은 '중배출 시나리오'의 모습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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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배출 시나리오인 〈SSP-2/4.5〉를 상정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습니다. 평균기온과 1일 최다강수량이 어떻게 달라지나 살펴봤습니다. 2041~2060년,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약 3℃ 오를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일최다강수량은 12%가량 늘어날 전망이고요. 폭염과 열대야, 그리고 폭우까지 늘어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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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기온 3℃에 무슨 폭염이 늘어나겠는가' 싶다면, 과거 한반도의 추이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1980년대와 2010년대, 불과 30년의 텀을 두고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0.9℃ 올랐습니다. '평균기온 0.9℃'는 폭염일수 증가(9.8일→14.9일), 열대야일수 증가(4.1일→9.9일), 여름 길이 증가(113일→127일), 겨울 길이 감소(102일→87일)라는 결과를 불렀습니다. 어쩌면, 2050년에 여름은 다섯 달이 넘고, 겨울은 두 달이 채 안 될 수도 있는 겁니다.

페트리샤 에스피노자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16% 증가라는 결론은 매우 큰 우려를 남긴다”며 “과학에 근거해 즉각적이고도 대대적인 감축이 필요하다는 경고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 이내로 묶기 위해선 즉각적인 감축이 시작돼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의 정점은 이제 '과거'여야만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까지 제출된 감축목표를 살펴보면,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는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형'이었습니다. 2030년까지 계속해서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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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유엔 기후변화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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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때보다야 진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 이내로 묶기엔 턱도 없는 수준입니다. 결국, 지금까지 취합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따르면,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의 '정점'은 2025년 즈음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고서는 “이렇게 되면, 2020~2030년 사이 앞으로 남아있는 탄소 예산의 89% 이상을 다 써버리고 만다”고 분석했습니다. 시점이 언제가 되든, 지구의 평균기온이 1.5℃ 상승하도록 만드는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그 남은 총량을 앞으로 10년 새 거의 다 써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결국_더욱_거세지는_감축_압박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이번 보고서는 곧, 아직 강화한 감축목표를 내놓지 않은 나라들에게 '신속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감축하라'는 메시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고서엔 '우회적인 압박'이 담겼습니다. “새 감축목표를 내놓은 113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30년, 2010년 대비 12%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113개국 중 70개국은 이번 세기 중반 탄소중립 목표까지 함께 세우면서 2030년 26% 감축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들 나라의 노력을 따로 평가한 겁니다. 여기에 에스피노자 사무총장은 “이들 나라에 축하의 메시지를 보낸다”며 “파리협정의 기온 상승폭 제한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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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유엔 기후변화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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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2.7℃ 상승이라는 이번 보고서의 내용은 국제사회가 6년 전 파리협정을 통해 약속한 것을 깨는 것”이라며 “과학은 이미 2030년까지 45%를 감축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국제사회는 도리어 16% 증가하는 계획안을 내놓았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의 내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구테헤스 사무총장은 또 “G20 국가들은 전체 글로벌 배출량의 80%를 차지한다”며 “그들의 리더십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G20 회원국이자 국제공인 선진국인 우리나라는 이러한 비판을 더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번 보고서 내용에 대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장다울 정책전문위원은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국으로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최소 50% 이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장 위원은 G20 회원국이자 선진국인 우리나라의 현재 위치 외에도 감축을 강화해야 하는 다른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750년부터 2019년까지 역사적으로도 우리나라의 누적 배출량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개국에 포르투갈의 누적 배출량을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기후위기와 과학은 결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_와중에_곡해되는_IAEA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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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IA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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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주말 사이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원전의 확대를 전망했다”는 기사가 국내 곳곳에서 쏟아졌습니다. 전 세계가 원전 확대에 몰두하는데 한국만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이죠. 기사만 보면 마치, IAEA가 차세대 전력원으로 재생에너지가 아닌 원전을 꼽았다는 것처럼 읽힙니다. 표지 등 포함 총 148페이지의 보고서 그 어디에도 그런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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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준, 전 세계 원전 발전량은 2553TWh입니다. IAEA는 2050년까지 원전 발전량이 최소 3140TWh에서 최대 6166TWh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발전량의 확대는 맞습니다만 원자력발전의 '비중 확대'를 의미하는 결과는 아닙니다. 원전의 발전 비중은 현재의 10.2%에서 2050년 최소 6.3%, 최대 12.3%로 변화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중간값을 놓고 봤을 때엔 비중의 증가보다 감소에 더 가깝습니다.

재생에너지의 비중 확대는 전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2050년 탄소중립 과정에서 원자력발전을 '제1 발전원'으로 계획하는 곳은 단 한 나라도 없습니다. 또한 “재생에너지를 줄이고 원전을 늘려야 한다”와 같은 원전-재생에너지 간 대립이 일어나는 나라 역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030년 감축목표 압박은 거세지고 있고,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도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까지 많은 난관이 예상됩니다. 이 와중에 의미도, 논리도, 근거도 찾아보기 힘든 대립은 말 그대로 '에너지 낭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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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박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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