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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물가와 GDP

생활물가 4개월째 3%대 상승…공수표된 “하반기 물가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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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가 오름세를 주도한 기저효과 및 일시적 공급 충격 등은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해소될 것이다.”

지난 5월 소비자 물가가 1년 전보다 2.6% 오르며 9년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 폭을 나타내자 홍남기 부총리가 한 말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5월 물가 상승률이 연중 최저치인 -0.3%를 기록한 데 따른 반사적 효과”라면서 “물가 흐름이 최근 안정세에 접어든 모습”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가가 안정될 거라던 정부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지는 분위기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8월까지 5개월 연속 전년 대비 2%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고, 8월에는 상승률이 2.6%로 5월ㆍ7월에 이어 또다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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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물가지수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체감물가는 이보다 더 크게 뛰었다. 구매 빈도가 높은 품목 141개를 골라 작성해 ‘체감물가지수’로도 불리는 생활물가지수는 지난달 3.4% 상승해 소비자 물가보다 상승세가 가팔랐다. 생활물가는 이미 4개월째 3%대 상승률을 이어왔는데, 이는 2011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최근 주요 추석 성수품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환율 상승ㆍ재난지원금 지급 등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늘면서 당분간 가파른 물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1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1.8%였다. 하지만 현시점에선 올해 2%대 상승이 기정사실이 됐다. 올해 1~8월 누계 기준 상승률은 이미 2.0%로 올라섰다. 연간 상승률이 2% 아래로 내려가려면 올해 남은 기간(9~12월) 매달 2%를 밑돌아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위기다. 이 경우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12년(2.2%) 이후 9년 만에 2%대로 올라서게 된다. 이미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8%에서 2.1%로 0.3%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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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사실 정부가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공언했던 것은 기저효과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0.1%, 5월은 -0.3%, 6월은 0%로 바닥을 기었다. 지난해 4~6월 물가 수준이 지나치게 낮았기 때문에 올해 조금만 올라도 물가가 크게 상승한 것처럼 보인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다. 지난해 7월부터 물가 상승률은 0.3%, 8월 0.7%로 다시 오름세를 탔다. 올해 7월부터는 기저효과의 영향이 적어지므로 물가 오름세는 하반기부터 완화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물가는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오판 원인으로는 원자재ㆍ곡물 가격 등 ‘외부 요인’을 간과한 점이 꼽힌다.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지만, 국제 무역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한국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수요가 늘면서 국제 유가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국내 제품에 반영되면서 연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폭염·가뭄 등 이상기후로 국제 곡물 가격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면 빵이나 식용유 등 가공식품 가격이 오르고, 사료 가격 등도 상승 압력을 받는다. 실제 지난달 수입물가지수(한국은행, 2015년 기준 100)는 120.79로 2014년 4월(120.8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21.6%나 상승했다. 이는 2008년 12월(22.4%)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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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물가지수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는 점도 정부가 손을 쓰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오랜 저금리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상태에서 지난해부터 재난지원금으로 60조원 가까운 돈이 더 풀렸다. 이달부터는 총 11조원대의 5차 재난지원금(코로나19 상생 국민지원금)까지 지급된다. 여기에 내년 초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규모 신도시 개발 토지보상금까지 나온다. 이처럼 시중에 풀린 돈은 물가를 더 자극하게 마련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물가 상승은 기저효과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낙관적인 판단을 하면서 적기 대응의 기회를 놓친 측면이 있다”며 “통상 추석은 연중 물가 체감도가 가장 높은 시기인데,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물가보다 더 높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반기 물가는 상승 요인이 하락 요인보다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쏟아지는 하반기 물가 자극요인



올해 남은 기간 물가 잡기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물가를 자극할 다른 요인이 산재해서다. 하반기에 백신 접종이 늘면 그만큼 경제 활동과 소비가 확대되면서 수요가 급증한다. 그간 억눌렸던 소비가 보복하듯 폭발하는 ‘펜트업 효과’가 본격화하면 물가가 크게 뛸 수 있다. 정부는 또 추석 연휴가 끝난 뒤 10월부터 소비를 촉진하는 상생소비지원금(신용카드 캐시백)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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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소비지원금(신용카드 캐시백).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집값 상승의 영향으로 주거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전세는 2.2%, 월세는 0.9% 상승했는데 이는 각각 3년7개월, 7년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수치다. 올해 들어 집세 가격은 오름폭이 가파르다.

전기ㆍ도시가스 요금도 추석 연휴 이후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전력용 연료탄 가격 인상과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급등으로 요금 인상 요인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평균 냉면 가격이 9577원으로 1만원에 육박하는 등 외식 물가의 상승세도 두드러진다. 재료비ㆍ인건비ㆍ임대료 등 고정비용 부담이 커진 영향이다. 외식 가격은 한번 오르면 그 후 내려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외부 요인 가운데서는 국제 유가가 가장 큰 변수다. 두바이유ㆍWTI 등 국제 유가는 지난해보다 약 75% 정도 오른 7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위기 회복, 백신 보급, 여전히 풍부한 유동성 등 유가를 끌어올릴 요인이 많아서다.

국제 유가는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장기간 상승세가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고유가는 기업 생산비용을 높이고, 이는 재화 가격에 전가돼 소비자 물가도 올린다. 과거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초래했던 ‘오일 인플레이션’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평균 70달러까지 오를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는 0.8%포인트 상승 요인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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