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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아파트값 17% 오를때 18% 껑충... 태양광, 논밭값 불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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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종지로 용도변경되며 땅값 뛰어… 농경지 야금야금 갉아먹어

강원도 춘천시 의암호 서쪽은 산이 높아서 골짜기를 따라 농지가 좁게 형성돼 있다. 하지만 이곳 일부 땅값은 크게 뛰어 2017년 1㎡당 4050원(공시가격)이었는데 올해 4만4600원인 곳도 있다. 11배나 뛰었다. 이 일대에 태양광발전 설비가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다.

제주시 남원읍 위미리 일대 토지도 2018년 ㎡당 9000원 수준이었지만, 남부발전이 태양광 사업을 위해 사들인 직후인 지난해 2만2000원을 넘겼다. 농지나 임야에 태양광발전 설비가 들어서면서 ‘용도 변경’ 등으로 농지 값이 오르리란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태양광이 늘며 전국의 농지 가격이 급등했다. 16일 한국부동산원의 전국 지가 변동률 자료에 따르면, 올 7월 기준 논 가격은 5년 전과 비교해 18.1% 올랐고, 밭은 18.7%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 상승률은 17.4%다. 농지 가격이 아파트보다 더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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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전남 영암군 학산면의 농지 사이로 곳곳에 태양광판이 설치돼 있다. 전남 지역에선 최근 5년간 사라진 농지의 16.9%인 1977ha가 태양광 발전시설로 전용됐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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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2배 농지·임야가 태양광에 덮였다

농지와 임야에 우후죽순처럼 태양광발전 설비가 깔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국민의힘 김태흠 의원(농해수위 위원장)이 농림축산식품부와 산림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태양광발전 설비 설치 목적으로 전용(轉用)한 농지가 8955헥타아르(ha)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전용한 임야 면적(5131ha)까지 합하면 1만 4086ha나 된다. 태양광발전 때문에 사라진 농지·임야가 울릉도 2배 면적에 달한다.

초기에는 산을 깎아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환경 파괴, 산사태 같은 문제가 끊이지 않자 평야의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전라북도는 최근 5년간 줄어든 경지 면적이 6929ha이고, 이 가운데 42.8%(2968ha)가 태양광발전 단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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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값 급등해 정부 매입 목표 60% 미달

태양광 설비가 크게 늘어난 전북 장수군은 태양광 사업 찬반을 두고 주민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9년 이후 우량 농지 보전을 위해 지정된 ‘농업진흥지역’ 내에도 요건을 충족하면 태양광 설비를 할 수 있게 되자 각종 편법을 동원해 태양광 사업을 벌이는 이들이 등장했고,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군청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전북 정읍의 농민 김모(49)씨는 “태양광 한다고 하면 농사짓지 않아도 시골 땅을 살 수 있으니 돈 많은 도시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태양광이 농촌의 미래까지 갉아먹는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새 농업인에게 농지를 빌려주기 위해 벌이고 있는 ‘공공 임대용 농지 매입 사업’도 농지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매년 6000억~7000억원을 투입해 농지를 사서 청년 농부들에게 빌려준다.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는 자녀에게 땅을 상속해 농업이 단절되는 것을 막고, 대신 실제 농사업을 하려는 이들에게 연결해주자는 취지다.

2018년1570ha의 농지를 매입할 계획이었는데 농식품부는 917ha(58.4%)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2500ha 매입 계획을 세웠는데 1574ha(62.9%)에 그쳤다. 농지 가격이 오르면서 정해진 예산 안에서 토지를 매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앞으로 30년간 전 국토의 7.5%에 태양광 설비를 세우겠다고 고집하고 있다”며 “식량 안보를 위해 자급률을 높이겠다면서 다른 한쪽에서 농지를 없애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충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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