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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사람 잡은' 도급비···현대엘리베이터 '싹둑', 일감 잃은 하청노동자 목숨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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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현대엘리베이터 협력업체 소속 직원이었던 A씨가 지난 10일 인천시 부평구 한 장례식장에서 생전 동료들의 배웅을 받고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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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엘리베이터 2차 협력업체인 ‘승강기 설치소’에서 일해온 40대 직원이 생계를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 승강기 설치소들은 원청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도급비를 올려달라”며 작업중단을 선언한 터였다. 이전에도 일부 설치소들이 모여 항의성 작업중단을 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2200여명이 대규모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원청업체의 도급비 삭감 여파로 설치소 직원들의 살림살이가 빠듯해진 터에 작업중단으로 그마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1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승강기 설치소에서 10년 간 일해온 A씨(45·남)가 지난 8일 오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승강기 설치소들이 작업중단에 들어간 지 17일째 되는 날이었다.

A씨의 동료에 따르면 그는 지난 7월 다른 승강기 설치소로 옮기면서 월급을 12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근무일수가 적은 탓이지만 과거 230만원을 벌던 데서 반토막 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작업중단이 시작됐고 A씨는 설치소장에게 임금 가불을 부탁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A씨는 작업중단 첫날 아내에게 “이번 중단은 대규모라서 좀 길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감이 없는 사이 일용직으로 공사장에 나가보려고도 했지만 장마철이 겹쳐 구직에 실패했다고 한다. 아내 B씨는 “작업중단이 한 주, 두 주 계속되자 집에 있는 하루종일 말이 없어졌다. 평소에는 가정적이고 아이들과 잘 웃는 아빠였는데, 나중에는 자기 전에 매일 혼자 술을 마셨다”고 했다. A씨 부부는 자녀 넷을 두고 있다. B씨는 A씨가 현대엘리베이터와 설치소들 사이에 도급비를 놓고 분쟁이 길어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도 유족의 진술을 받아들여 A씨가 경제적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고 결론내렸다.

현대엘리베이터와 설치소들의 갈등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는 건설경기가 좋던 때여서 설치소 소장과 직원들이 많게는 400만원 넘게 월급을 챙겨갔다. 하지만 2019년 현대엘리베이터는 건설경기 침체와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신기술 도입 등을 이유로 협력사들에게 지급하는 도급비를 대폭 줄였다. 이 무렵부터 직원들은 매달 최저임금 수준인 230만원 정도를 받게 됐다. 소장은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면 빈털터리가 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승강기 설치는 현대엘리베이터 본사가 일거리를 1차 협력업체에 주면 1차 협력업체가 이를 2차 협력업체인 설치소에 재하도급하는 구조로 이뤄진다. 1차 협력업체는 본사가 준 도급비에서 수수료 10%를 뗀 나머지 돈을 설치소에 준다. A씨의 동료였던 한 설치소 소장은 “저는 3명의 직원을 데리고 있는데, 한 달에 1400만원 정도 도급비가 들어온다. 직원들의 인건비와 공구비, 세금, 보험료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한 달에 200만원도 구경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2018년까지 매년 도급비 인상률이 평균 8.9%를 기록했고, 2019년부터 건설경기가 꺾이면서 설치소 관련 비용 부담이 커져 도급비 재산정이 필요했다”며 “2019년의 삭감은 그동안의 인상률에 비해 크게 떨어진 정도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매년 협력사와 10~11월 임금 협상을 하는데 올해는 설치소 측에서 갑자기 7월에 인상을 요구했고, 인상해주지 않으면 단체행동을 하겠다고 해 9월1일 협상을 시작하자고 했지만 기다리지 않고 작업중단을 시작했다. 현재 본사와 협력사들은 올해 말까지 계약을 맺은 상태이고 협력사들이 계약을 불이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A씨의 사망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손구민 기자 km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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