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8 (수)

유흥업주들 “집합금지 500일 준수… 돌아온 건 파산·이혼·죽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당초 전국서 차량 1000대 동원

청와대 행진 계획은 경찰이 차단

“제발 살려달라” 정부에 호소

“누구든 3개월만 봉급 못 받으면 들고 일어날 겁니다. 우린 16개월째 집합금지입니다. 도둑질이라도 해야 합니까.”

15일 오후 4시 10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 유흥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 20여명은 ‘1인 릴레이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방역 대책을 성토했다.

서울 강북구에서 스탠드바를 운영한다는 이명구(71)씨는 “생전 자식들한테 손 벌린 일이 없었는데 6개월 전부터 자식들한테 생활비를 받고 있고, 4개월 전엔 아내가 이혼을 통보했다”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최모(52)씨는 “정말 굶어 죽을 것 같아서 여기 나왔다”고 했다.

회견을 주최한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의 최원봉 사무총장은 “코로나 이후 1년 6개월 중 1년 4개월간 영업을 하지 못해 삭발과 혈서, 각종 데모와 1인 시위 등 80여 차례 시위를 했는데 정부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며 “즉각 집합금지를 해제해달라”고 했다.

주변 도로에는 ‘집합금지 해제하라’ ‘강제 집합금지 500일’ 등의 팻말을 붙인 자영업자들의 차량 10여 대가 정차돼 있었다. 이들은 당초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을 비롯한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자영업자들의 차량 1000대를 동원해 청와대로 경적을 울리며 행진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경찰의 통제로 집결이 제한되자 결국 이를 포기했다. 경찰은 이날 8개 부대를 동원해 회견장 일대 도로를 통제했다.

이들이 길거리로 나선 것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유흥업 종사 자영업자들의 극단 선택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 사무총장은 “최근 원주에서도 자영업자 한 분이 생활고를 못 이겨서 돌아가셨다”며 “더 이상 극단 선택을 하지 않도록 정부의 대책을 듣고 싶어 나왔다”고 했다.

15일 강원 원주경찰서에 따르면, 13일 원주시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던 A(52)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코로나 여파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자 주위에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해왔고 지난해 이혼을 한 후 홀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그는 자택 안방에 쓰러진 채 발견됐고, 유서는 따로 남기지 않았다. 그의 지인 B씨는 “(A씨가) 월 300만원쯤 되는 임차료를 수개월째 밀렸고 보증금도 이미 바닥난 상태였던 것으로 안다”며 “장사는 안되고 임대료·공과금은 계속 밀리니 이를 비관한 것 같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정황이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라고 했다.

전국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도 15일 “1년 넘게 이어지는 영업 제한으로 자영업자들의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지난 12일 밤부터 14일까지, 전국에서 코로나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의 사례 22건을 제보받았다”고 밝혔다. 조지현 비대위 공동 대표는 “이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16일부터 사흘간 서울 시내 모처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운영할 계획”이라며 “자영업자들의 단체 대화방에서도 매일 ‘죽고 싶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제발 우리를 살려달라”고 했다.

[채제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