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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단일 교회 개척한 조용기 목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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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교회로서 세계 최대 교회를 일구었던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14일 뇌출혈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소천했다. 8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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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교회로서 세계 최대 교회를 개척해 기네스북에도 등재했던 조용기 목사가 14일 소천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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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목사는 지난해 7월 교회 집무실에서 출입문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졌다. 뇌출혈 증세로 수술을 받았고 지금껏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1936년 2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에서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한 천석꾼 집안이었다. 부친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면서 집안이 기울었다. 1950년 5월에 열린 제2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부친 조두천이 입후보했다가 낙선했다. 재산이 거덜 났다.

불과 한 달 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부산으로 피난한 고인의 가족은 혹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고인은 부산에서 부산공고에 다니다가 폐결핵에 걸렸다. 당시만 해도 폐결핵은 전염병이라 가족과 격리돼야 했다. 3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사망선고를 받았을 때 세 살 위인 누나의 친구가 성경책을 건넸다. 고인이 성경을 공부하며 기도를 시작한 첫 계기였다.

아직 기독교를 잘 알지 못했던 고인은 부산에서 우연히 켄 타이스 미국 선교사가 인도하는 부흥회 천막에 들어섰다. 선교사의 부흥회 기도에 고인은 난생처음 눈물을 쏟으며 통곡했다고 한다. 부흥회를 마친 뒤 고인을 만난 타이스 선교사는 고인의 영어 실력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때부터 고인은 타이스 선교사를 따라다니며 영어 설교를 우리말로 통역하는 일을 했다. 타이스 선교사는 미국 오순절교단하나님의성회 소속이었다.

고인은 금식 기도 중에 흰옷 입은 예수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게 고인이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는 주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고인은 서울 서대문에 있던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 입학은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훗날 그의 장모가 되는 최자실(1915~89) 여사를 신학교 입학 동기생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최 여사는 오순절 신앙에서 성령세례의 증거로 보는 방언을 고인이 할 수 있게끔 도와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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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에 폐결핵을 앓으며 사망선고를 받았던 조용기 목사는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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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신학교를 졸업한 고인은 전도사가 됐다. 최자실 전도사와 함께 서울 은평구(당시에는 서대문구) 대조동에서 가정예배를 시작했다. 대조동은 달동네 무당촌으로 불리던 빈민촌이었다. 사과 상자에 보자기를 씌워 강대상을 만들고, 온 동네에 예배를 알렸다. 그러나 창립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면 밭일을 하다가 비를 피하려고 온 할머니 한 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인 수가 늘어났다. 50명쯤 됐을 때 집 앞마당에 천막을 친 뒤 가마니를 바닥에 깔고 예배를 드렸다. 천막 교회의 시작이었다. 교인 수는 더 늘어났고, 천막의 크기도 더 커졌다. 3년 만에 교인 수가 300명을 넘어섰다. 고인은 방언과 함께 오순절 운동이 성령세례의 또 다른 증거라고 주장하는 축사와 신유(神癒ㆍ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 의식을 자주 거행했다. 병원에 가기 힘들었던 가난한 병자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외지인들이 천막 교회로 몰려들었다.

1961년 고인과 장모 최자실은 서대문에 두 번째 교회를 개척했다. 이듬해 고인은 목사 안수를 받았다. 최자실 여사의 둘째 딸 김성혜와 결혼도 했다. 이로부터 3년 후에 재적 교인 3000명, 다시 3년 후에는 재적 교인 8000명을 넘어섰다. 갈수록 늘어나는 교인 수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당시 ‘여의도 백사장’으로 불리며 황량한 땅이었던 여의도에 교회당을 신축했다.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교회였다. 1973년 건물이 완공되자 서대문의 8000명 교인이 이곳으로 이동했다. 이때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 시대가 열렸다.

조용기 목사는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내세우며 단일교회 역사상 세계 최대 교회를 일구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영혼은 구원을 받고, 하는 일마다 잘 되고, 건강도 지켜낼 수 있다는 논리가 삼중축복이다. 중생ㆍ성령충만ㆍ신유ㆍ축복ㆍ재림의 복음이 오중복음이다. 조 목사의 이른바 ‘3박자 구원론’은 기독교계에서 한국교회의 기복신앙과 물량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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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서울 힐튼호텔 컨벤센터에서 열린 제37회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조용기 목사가 기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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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교인 수가 가장 많았을 때는 무려 78만 명에 달했다. 방언과 병자 치유를 강조하는 조 목사의 목회에 대해 초기에는 이단 논쟁도 있었다. 기성 교단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을 때 장로교단의 어른인 한경직 목사가 “이제 그의 교세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양적 성장을 감안할 때, 그의 교단을 더 이상 이단으로 부를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93년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당시 재적 교인 70만 명으로 세계 최대의 교회로 등재됐다. 북한의 평양에 심장병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 건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1998년 일간지 국민일보를 설립했고, 사단법인 선한사람들을 세워 인권ㆍ환경ㆍ아동복지 활동을 했다. 2008년 은퇴한 조용기 목사는 이영훈 목사을 후임으로 세우고 원로목사가 됐다.

유족으로는 희준ㆍ민제ㆍ승제 세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다니홀에 마련됐다. 조문은 15일 오전 7시부터 받는다. 근조 화환 등은 일체 받지 않는다. 장례예배는 18일 오전 8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한국교회장으로 치러진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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