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 교수 '가짜 남편 만들기' 펴내…"상속은 중요한 문제 아냐"
대구 경상감영지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백사 이항복(1555∼1618)이 쓴 '유연전'(柳淵傳)이 몇 개월 사이에 학계에서 흥미로운 화두가 됐다.
유연전은 소설로 알려졌지만, 조선왕조실록에도 이야기가 실린 실재 사건이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처형당한 이 사건은 줄거리가 매우 복잡해서 몇 줄로 요약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문학자인 강명관 부산대 교수가 쓴 신간 '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은 유연전에서 핵심 인물을 여성 백씨 부인으로 본다. 또 사건을 일으킨 가장 주요한 원인은 백씨 부인의 '욕망'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견해는 불과 두 달 전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저서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에서 유연전을 '상속'이라는 열쇳말로 분석한 것과 대비된다.
권 교수는 이 책에서 사건 발생 시점인 16세기가 균등 상속에서 장자 우대 상속으로 변하는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만일 장자 우대 상속이 정착된 조선 후기였다면 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강 교수는 신간에서 사회 제도가 아닌 개인의 내밀한 면을 들여다본다.
그는 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상속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며 "상속으로만 보면 개별 사람들의 욕망,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항복의 유연전과 권득기(1570∼1622)가 남긴 문헌 '이생송원록'을 바탕으로 1550∼1570년대에 이어진 기묘한 사건을 풀어나간다.
사건의 발단은 대구 양반가에서 발생한 유유(柳遊)의 가출이다. 유유는 사람 이름으로, 그의 동생이 유연이다. 유유는 백씨 부인과 결혼했는데, 아이가 없었다.
유유가 집을 떠난 뒤에 유유·유연 형제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유유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의 실명은 채응규이지만, 유유 행세를 한다. 채응규가 유유라고 처음 알린 사람은 유유의 자형(누나의 남편)이자 세종 후손인 '이제'였다.
사건은 백씨 부인이 채응규가 남편이 맞는다고 인정하면서 꼬여 간다. 유연은 가짜 유유인 채응규를 형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대구부에 채응규가 진짜 유유인지 가려 달라고 요청한다. 이때 채응규는 대구부에 성관계 경험을 바탕으로 백씨 부인의 신체 특징을 이야기했고, 백씨 부인은 사실이라고 했다.
유유의 진위를 가리는 동안 채응규가 달아났고, 백씨 부인은 형을 죽였다는 이유로 유연을 고소했다. 유연은 심한 고문을 받아 허위 자백을 했고, 처형됐다. 노비 두 명도 죽임을 당했다.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유연이 죽고 15년이 흐른 뒤 진짜 유유가 돌아온 것이다. 가짜 유유인 채응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채응규의 진짜 부인은 극형을 받았다. 이제는 고문으로 죽었다.
안타깝게도 이 사건으로 모두 6명이 눈을 감았다. 그런데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백씨 부인은 살아남았다. 그는 조사도 받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저자는 이 점이 비합리적이라고 여긴다.
일단 저자는 사건의 앞부분에서 왜 백씨 부인이 가짜 남편 채응규를 진짜라고 했는지, 왜 채응규의 아들을 받아들였는지, 왜 시동생인 유연을 고소했는지 묻는다.
그러면서 유유가 불임 남성이고 가출한 까닭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 정체성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는다. 이어 남편이 '제3의 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백씨 부인은 절망했고, 남편 행방을 모르는 상황에서 채응규를 남편으로 인정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백씨 부인이 채응규와 잠자리를 같이한 것도 사실일 확률이 높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백씨 부인에게 재혼은 불가능했기에 채응규와 공모하는 것이 인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또 무당이자 사기꾼이었던 채응규는 양반 행세를 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고 평가한다. 한편 유유의 자형인 이제는 그저 유유가 살아 있다는 정보만을 전했을 뿐인데, 처남인 유연을 사지에 빠뜨린 악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핵심 인물인 백씨 부인은 어떻게 조사를 회피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유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백씨라는 생각은 당시에도 일정하게 공유됐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백씨에 대한 조사는 백씨와 채응규의 성관계는 물론 유유가 가진 성적 문제를 드러낼 것이었다"고 강조한다.
이어 "사족(士族) 남성이라면, 그것도 한 집안의 적통을 이을 적장자가 '제3의 성'을 가졌다면 은폐돼야 마땅했다"며 "이제를 악인으로 만든 유연전은 유교적 가부장제와 사족사회의 모순을 근저에서 은폐하는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인다.
즉 남성과 여성만 인정한 조선에서 '제3의 성'이 얽힌 이 사건은 매우 처리하기 곤혹스러운 난제였기에 백씨 부인이 조사 대상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450년 전쯤 일어난 이 사건의 진실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 출간된 두 책을 읽어보면 유연전이 당시 사회의 복잡한 일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푸른역사. 280쪽. 1만5천900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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