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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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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화려한 연등 대신 '마음의 등불' 들었던 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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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 켜는 건 형식, 마음의 지혜 밝히는 게 중요"…이웃 교회 건립비용 전하기도

연합뉴스

고우스님과 박희승 교수
(서울=연합뉴스) 29일 입적한 고우(古愚)스님이 생전 불교인재원 박희승 교수와 함께 앉아 활짝 웃고 있다. 2021.8.29 [박희승 제공. 재배포 및 DB금지] (끝)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29일 입적한 고우(古愚)스님은 출가한 뒤로 부처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 수행 정진한 한국 대표 선승으로 평가된다.

교계에 따르면 고인은 2006년 경북 봉화에 금봉암을 창건해 주석해왔다. 이 절에서는 다른 사찰과 달리 제사와 불공을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오직 법문과 참선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한다.

보통 절에서는 제사와 불공으로 운영비를 마련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스님이 머물렀던 금봉암은 이를 배제하고서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중도(中道)' 화두 수행에 매진한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에도 금봉암에서는 연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지난해 고우스님의 법문과 인터뷰 등을 모아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이라는 책을 펴낸 불교인재원 박희승 교수는 최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연등과 관련한 고우스님의 일화를 전했다.

"부처님오신날에 연등을 켜지 않는 곳은 금봉암밖에 없었을 겁니다. 고우스님은 '연등을 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의 등을 켜라, 밖으로 켜는 것은 형식이고, 마음의 지혜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부처님 원래 뜻하신 대로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박 교수는 고우스님이 이웃종교에도 넉넉한 마음을 가진 분으로 기억했다.

그는 스님 입적에 즈음에 쓴 글에서 "절(금봉암) 아랫마을 사람들이 세운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낡아 새로 짓는다고 하자 선뜻 적지 않은 돈을 보시했다"면서 "어린이들을 좋아해 절에 아이들이 오면 남모르게 용돈을 주거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셨다"고 돌아봤다.

평생 화두를 들고서 참선수행에 매진했던 대표 선승에게 인생의 끝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말년에 스님은 가까운 이들이 안부를 여쭈면 '폐결핵으로 죽으려고 절에 왔는데, 불교를 만나 병도 낫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하며 '아무런 여한이 없다. 이제 빨리 가야지' 하셨습니다. 또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전해라'고 하셨습니다."

그도 80세를 넘어서는 부쩍 건강이 쇠약해졌다. 당뇨에 경도인지장애가 왔고, 심장 등에 이상이 생기며 지난주 경주 동국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그럼에도 건강이 급속히 악화하며 지난 주말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입멸의 세계에 들었다.

박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의식이 있는데 말씀은 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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