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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물가와 GDP

1806조 가계빚 뇌관·물가 경고음에…美보다 앞서 금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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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린 초저금리 시대 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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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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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상한 것은 역대 최대로 불어난 가계 빚(올해 2분기 1806조원)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볼 수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올 들어 잇달아 구두 경고에 나섰지만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금리 인상을 행동에 옮기며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당초 한은은 기준금리를 올리기 위한 조건으로 △가계부채 급증 △양호한 경제성장 △코로나19 진정 상황 △물가 상승 압박 △미국 금리 인상 선제 대응 등 다섯 가지를 들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델타 변이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데도 금리 인상 버튼을 누른 것은 한은이 코로나19보다 가계부채 증가 위험을 더 크게 본 것이다.

◆ 가계부채 폭탄 뇌관 제거

이번 금리 인상의 주요 근거로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가 손꼽힌다. 2분기 가계 빚(가계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을 합친 금액)은 전년 대비 10.3% 급증한 1806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이 강해진 데 따른 것이다.

이 같은 행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경제주체들의 차입 비용이 커지고 위험선호 성향을 다소 낮추게 된다"며 "가계부채 증가세나 주택가격 오름세를 둔화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가 이자 부담이 늘어 소비가 위축되는 '부채의 함정'에 빠질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그는 "지금 경제주체의 이자 부담 능력이나 소비 여력, 가계 저축 정도 등을 보면 부채의 함정에 빠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지금 가계부채를 붙잡는 데 실패하면 우리 경제에 더 큰 충격이 올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한은은 늘어난 빚이 자산시장으로 흘러간 가운데 갑자기 버블이 꺼지는 강한 충격이 발생하면 가계·기업이 66조8000억원에 달하는 신용 손실(빚을 갚지 못하는 사태)을 볼 것으로 분석했다.

◆ 수출 버팀목에 4% 성장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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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등이 단단히 버티며 올해 4.0%의 양호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금리 인상의 배경이 됐다. 우리 경제 체력이 0.25%포인트 올라가는 금리 충격은 감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한은은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도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4.0%로 유지했다. 반도체, 자동차 등 수출 개선이 지속되고 있고, 정부 재난지원금 등으로 인한 소비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시작된 7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54만명 이상 늘었는데 신용카드 승인액(14조517억원)도 7% 증가하는 등 고용·내수가 버텨주고 있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수출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40.9% 급증했다. 이날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 전망치를 종전 700억달러에서 820억달러로 높여 잡았다.

이 총재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이 겹쳤기 때문에 금리 인상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클 것"이라면서도 "통화정책은 거시경제 여건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고, 금융 불균형 누적 상황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취약계층만을 타깃으로 해서 집중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당연히 재정이 1차로 담당해야 할 몫"이라며 "한은도 금융중개지원대출 제도를 통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강해지는 물가상승 압박

다음달 추석 명절을 앞두고 돈이 대폭 풀린 가운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도 초저금리가 부담스러운 이유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개월째 2%를 웃돌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이날 한은은 올해 물가상승 전망치를 종전 1.8%에서 2.1%로 높여 잡았다. 올해 예상 물가가 한은의 물가안정목표 수준(2%)을 넘어선 상태에서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인플레이션 압력도 크다. 8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율(2.4%)은 2018년 12월(2.4%) 이후 2년8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 미국 금리 인상 선제 대응

미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움직임이 본격화하기 전에 먼저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다. 시장에서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7일 밤(한국시간)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테이퍼링 시점과 관련한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잭슨홀 이벤트 전에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 미국 정책금리와 격차를 유지하며 자본 유출 위험을 최소화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자본시장에서는 테이퍼링 전망에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집중 매도하면서 주가가 하락하고 원화값이 급락했다. 이 총재는 지난 5월 "금리 인상을 미뤘다가 미국이 할 때 따라가면 금융 불균형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미국을 뒤따르지 않고 '마이웨이'를 걷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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