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산책' 3부 『대서울의 길』 낸 김시덕 교수
"수도권 아니라 대서울. 통근-통학 따라 확장"
미군들로 북적였던 파주 파평면 장파리의 한 클럽. 지금은 폐업했다. '가왕' 조용필이 섰던 곳이기도 하다. 김시덕 교수는 이런 곳을 '도시 화석'이라고 부른다. [사진 김시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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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 5개 있었다? 저는 관심 없어요. 그보다는 우리가 걷고 있는 길, 낮에 들른 가게나 식당처럼 지금의 서울에 주목해보자는 것이죠."
최근 『대서울의 길』을 낸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대서울의 길』은 『서울 선언』 『갈등도시』에 이어 낸 '서울 선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서울 선언' 시리즈는 대한민국의 『동국여지승람』 같은 책이다. '대중교통과 걷기'를 통해 서울 곳곳을 관찰하고 변천사와 주민들의 구술을 넣었다. 얼핏 지나가기 쉬운 간판 하나, 표지명 하나, 버스 시간표에 대해서도 그 유래를 찾아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현재 (성북구 종암동) 고려 시장 상가에는 고려 상회라는 이름의 슈퍼마켓이 있는데, 〈양곡 소매업 제250호〉 및 〈쌀/소금〉 등의 간판으로 보아 그 연혁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시의 화석일 터입니다."
『서울 선언』은 서울에 자리한 궁과 기와집 대신 일반인이 사는 주택과 아파트, 길, 식당 등에 주목하며 새로운 스타일의 답사기로 주목받았고,『갈등 도시』는 의왕, 군포, 과천, 시흥, 성남 등 서울의 외곽으로 밀려난 특수시설과 그에 얽힌 서사를 다뤘다. 이번 책은 범위를 강화, 파주, 평택, 춘천, 철원까지 확장했다. 왜 '서울 선언'에 포함되었을까.
서울 아현고가도로가 철거되기 전 김시덕 교수 [사진 김시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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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교수 [사진 김시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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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근·통학권 지역을 포함했다. 수도권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면(面)을 중심으로 한 개념인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서울 생활권인 수지와 농업지대가 많은 처인은 같은 용인이지만 다른 지역에 가깝다. 서울에서 선(線)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따라가야 서울과 그 주변이 명확하게 보인다. 그래서 나는 수도권보다는 '대서울'이라는 개념을 썼다. 아침에 동서울, 강남, 양재, 사당 등에서 버스 정류장에 길게 줄을 선 직장인들에게서 대서울의 구조가 보인다. (책의 부제도 '확장하는 도시 현재사'다.)
도시를 대표하는 유적 대신 경계부와 특수시설, 쇠락한 상권 등에 눈길을 돌리는 것은 여전하다. 파주나 철원 등을 다니며 해방 전 교통의 요지로서 상업이 흥했지만 이제는 희미해진 흔적들을 다루고, 평택에선 캠프 험프리스 재배치로 고향을 잃고 흩어진 이주민들을 찾아갔다.
경기도 파주의 한 버스 정거장. 자이언트 부대라는 명칭이 지역의 특색을 보여준다. 김시덕 교수는 이런 평범하지만 시대를 반영하는 일상의 풍경에 주목한다. [사진 김시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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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민 대다수는 평민 출신이다. 조선이 아니라 개항 이후가 삶에 직결된 역사다. 사실 서울 4대문 외엔 조선 시대 흔적이 많지 않다. 현대 한국의 모습을 만든 것은 식민지 때부터 개발독재시대를 거친 현재까지의 100년이다. 개발하고 원주민을 이주시키고 높은 아파트를 짓고 그러면서 땅의 성격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성남 '광주대단지 사건'(1971)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반도 그런 측면에서 봐야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인문학을 내걸고 자꾸 조선 복원을 강조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그래도 너무 주변부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서울에 교도소 같은 특수시설이 없는 것은 안양 등 주변 도시로 보내서다. 서울 시민의 예비군 훈련소도 서울 밖에 있다. 누군가 서울의 짐을 떠안은 거다. 그런데 서울 시민들은 이런 것을 잘 모른다. 이런 곳을 답사하고 나면 예전과는 서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인문학자로서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 궁이나 양반 가옥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다. 20세기 초 백정 신분해방 운동인 형평사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진주 시민들의 돈을 모아 기념비를 세웠는데 얼마 전 임진왜란 승전탑을 세운다고 그것을 성 밖으로 밀어냈다. 나도 임진왜란 관련 연구로 책을 썼지만, 이것은 퇴행적 현상이다. 우리를 만든 100년을 지우고 위대한 조선과 21세기 대한민국만 기억하려고 한다.
캠프 험프리스 이전사업. 빨간색 점이 아래 노란원에서 이주한 4개 마을이다. [사진 김시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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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험프리스 재배치로 이전한 평택 두릉지구에 세워진 망향비 [사진 김시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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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지역은?
=평택이다. 미군 캠프 험프리스 이전사업으로 대추리 등 4개 마을이 강제 이주됐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립기념관과 울산항을 만들 때도 강제이주가 있었다. 대한민국 곳곳에 이런 사연이 있다. 모두 대추리처럼 갈등을 겪은 것은 아니다. 울산항을 지으며 이주된 용연마을 망향비를 보면 '아쉽지만 국가를 위해 정든 고향 땅을 내준다. 이 땅이 어떤 용도로 쓰이든 축복 속에 번창하길 기원한다'고 적혀있다. 사실 캠프 험프리스 문제도 대추리 외 3개 마을은 협상이 잘 됐고 용연마을과 같은 망향비도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런 지역은 묻히고 대추리처럼 NL 계열 운동권들의 입맛에 맞는 지역만 반미의 상징으로 대표성을 얻고 있다. 이 또한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서사다.
-대서울이 어디까지 확장될까.
김시덕 교수의 신간 『대서울의 길』 [사진 열린책들] |
광주 전남방직 건물에 선 김시덕 교수. '쥬단학 화장품' 등 과거 화장품 브랜드 로고가 거울에 붙어 있다. [사진 김시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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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최근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을 상대로 교육부에 재임용 탈락에 대한 교원소청심사를 신청했다. 그는 2017년 재임용심사에서도 탈락했다가 문제 제기로 재심사 후 재임용됐다. 4년 만에 같은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김 교수는 "논문 심사에서 평가가 '수'~'가'로 극단적으로 엇갈리면서 평점이 낮아졌다.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소위 애국적 국학자도 아니고, 국제주의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학자인데다 '비서울대' 출신이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런 김 교수의 주장에 대해 17일 서울대 규장각 측은 “아직 진행중인 사안이라서 현재 규장각에서 따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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