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정치만큼 개인의 삶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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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한테는 사형 선고 같은 말이죠."
도쿄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한 한 국가대표 선수의 말입니다. '도쿄 올림픽 보이콧(거부)' 주장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묻자 한 대답이었습니다. 이른바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는 종목에서 뛰는 이 선수는, 올림픽을 "4년에 한 번, 혹은 평생 한 번 오는 기회"라고 표현했습니다.
"선수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왜 말이 안 되는지는… 참 뭐라고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그냥 말이 안 되는 거니까요."
역시 비인기 종목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선수는 올림픽을 "인생에 단 한 번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종목을 비롯한 수많은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이 두 대회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주목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훈련에 집중하느라 보이콧 이야기를 전혀 몰랐다면서도 "정치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인생과 사정도 중요하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레 털어놨습니다.
축제는 끝났습니다. 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고작 일주일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다들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왔습니다. 독도 표기 논란이니, 코로나 폭증 우려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올림픽은 올림픽이더군요. 어쨌든 지긋지긋한 코로나와 그 밖의 온갖 일상의 시름을 잠시 덜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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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가장 빛났던 건 우리 선수들이었습니다. 잘 쏘고 잘 뛰고, 무엇보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선수들의 표정과 몸짓에 사람들도 함께 환호하고 웃었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니라 시상대에 서지 못해도 "행복하다"라고 외치는 선수들과 그런 선수들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이 정말 달라졌구나 실감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더 성숙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순수하지 못했던 '도쿄올림픽 보이콧' 주장
다만 올림픽 직전 정치권에서 불거진 '도쿄 올림픽 보이콧' 주장을 떠올리면 아직 다 그런 건 아니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리는 있었습니다. 도쿄 올림픽 조직위가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는 '생떼'를 또 한 번 부리며 우리 심기를 또 한 번 긁었습니다. 아니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 데 그토록 집요하게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행태는 정말 불쾌하고 짜증 나는 일입니다. 마땅히 분노하고 따져야 할 일 맞습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도쿄 올림픽 보이콧"을 외쳤던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을 그저 순수하게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나라를 이끌어갈 대선 후보의 발언이라기에는 너무 가볍고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배경과 목적에만 매몰돼 선수 개인의 삶에 대한 배려와 이해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반일 감정을 정치적 도구 삼아 강성 지지층에 호소하거나 경선을 앞두고 반등의 발판을 마련해보려는, 정치적 노림수만 번뜩였습니다. 그나마 한 후보가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의 미래도 있으니 국가 단위로 참여하지 않고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라고 말했던 걸 다행이라고 위안 삼아야 할까요.
근대5종경기가 끝난 뒤 포옹하고 있는 전웅태-정진화 선수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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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선수들에게 올림픽이 갖는 의미는 상상 이상입니다. 위 선수의 말마따나 4년, 또는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할 기회를 잡기 위해 선수들은 몇 년 몇 달에 걸쳐 땀을 흘리고 몸을 만듭니다. 비인기 종목이나 개인 종목 선수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더구나 운동선수의 신체 능력은 시기와 큰 연관이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다시는 전성기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 종목 선수들은 모든 인생 계획을 올림픽에 맞춰 설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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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우리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긴 양궁의 김제덕 선수는 원래 부상으로 대표 선발전에 기권했지만 코로나 19로 올림픽이 한 해 미뤄지면서 다시 기회를 잡은 경우입니다. 김제덕 선수는 운이 좋았지만, 그 반대의 케이스도 있습니다. 안타까워 차마 언급조차 어려운 선수들입니다. 다음에 한 번 더 도전하면 되지, 하고 말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다. 좀처럼 웃을 일이 없던 우리 국민에게도 모처럼 큰 행복과 감동을 주었다고, (올림픽이 끝나자) 정치인들 스스로도 말한 바 있습니다.
물론 독도 문제는 중요합니다. 국가의 주권과 자존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맞습니다. 관점에 따라선 올림픽보다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정치인이라면 국가를 구성하는 한 개인의 삶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수 개인의 삶'에 대해 몇몇 정치인들은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얼마 전 TV토론에서 '도쿄 올림픽 보이콧은 경솔한 주장이었다'는 비판에도 "올림픽과 영토를 계량하자면 영토가 더 중요하니까"라는 입장을 거듭한 후보도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핑계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이번 도쿄올림픽이, 만약 참가하면 독도를 빼앗기게 되는 상황이었습니까? 보이콧 말고도 합리적으로 우리 주권을 지킬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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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만큼 개인의 삶도 소중하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과 스포츠는 국위선양의 장 또는 체제경쟁의 대리전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수십 년 전 4전 5기 끝에 "세계챔피언 먹었다"는 아들의 전화에 어머니가 뱉은 첫 마디는 "대한 국민(대한민국이 아님) 만세다"였습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에게 부모가 "너는 이제 나라의 아들이다"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는 한두 개가 아닙니다. 올림픽 메달 개수로 국력이 평가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메달을 따고도 금메달이 아니면 죄인이 되던 시절이, 우리 선수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우리 정치인들의 인식이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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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올림픽은 그 변화를 실감한 대회였습니다. 유독 빛나는 4등이 많았습니다. 선수들도 당당했고 보는 이들도 진심으로 축하할 줄 알았습니다. 높이뛰기의 우상혁 선수, 다이빙 우하람, 수영의 황선우, 온 국민이 응원했던 여자 배구 대표팀은 적어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1등보다 더 빛난 '노메달' 국가대표였습니다. 메달 따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서였을까요? 그보다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아는 멋진 선수들과 그런 선수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축하할 수 있는 우리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 달라진 가치관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때로는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하고, 집단의 명예와 위상보다는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시민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자와 통화한 선수 가운데 한 명은 "도쿄올림픽 보이콧 주장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의미냐고 묻자 "저희는 운동이 전부니까 운동밖에 모르고, 올림픽이 먼저지만 정치하시는 분들은 민감한 문제나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니까 그분들 입장에선 그게 먼저일 수도 있겠다 싶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올림픽에서 큰 성과를 냈던 선수의 마음 씀씀이는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했던 정치인들은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봤을까 묻고 싶어졌습니다.
정치는 때로 스포츠보다 더 치열한 전쟁입니다. 선거는 특히 그렇습니다. 이기면 살고, 지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당장의 정치적 이익과 목적보다, 개인의 삶도 배려하고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아는 정치인들이 보다 많아졌으면 합니다. 수준 높아진 우리 국민들이 내년 대선에서 어떤 후보를 선택할지,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강청완 기자(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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