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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사이공보다 치욕" 美 20년 아프간 전쟁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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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철수 발표 4개월 만에…탈레반, 수도 카불 입성

아프간 정부 “평화롭게 권력 이양” 사실상 항복 선언

“대통령은 타지키스탄행”…블링컨 “미군 철수가 국익”

아프간 관료들, 청사에서 도망쳐

과도정부 수반, 자랄리 임명 가능성

카불 미 대사관, 기밀 서류 다 태워

바이든, 철수지원 병력 5000명 급파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이 나라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한 데 이어 15일 수도 카불에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AP·AFP 통신과 BBC·CNN 등이 보도했다. 이날 AFP통신은 아프가니스탄 내무부가 “탈레반에 권력을 평화롭게 넘기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백기 투항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탈레반 협상단이 권력 인수 준비를 위해 대통령궁으로 이동 중”이라고 밝혔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타지키스탄을 향해 떠났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스푸트니크 통신은 가니 대통령은 제3국으로 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로써 2001년 9·11 테러 뒤 미군이 ‘항구적 자유’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군 철수와 친서방 정부의 항복, 탈레반 세력의 부활로 막을 내리게 됐다. BBC 등에 따르면 이날 서방 국가들은 자국민 철수작전에 들어갔고,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는 국외로 탈출하려는 인파가 몰리면서 1975년 베트남 패망을 떠올리게 했다. 아프간 정부 관료들이 청사에서 도망치는 장면도 목격됐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카불의 대사관 인력 철수작전에 나섰다. 미 공영방송 NPR은 탈레반이 카불을 포위하자 미군이 헬리콥터를 이용해 자국 대사관에서 외교관들을 실어나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의 카불 진입이 임박하면서 미 외교관들은 짐을 꾸리고 기밀 서류 등 민감한 자료를 소각로와 파쇄기로 폐기하는 등 철수 준비에 들어갔다.

미군 철수 끝나기도 전에 … “사이공 함락 때보다 치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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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관총과 유탄발사기로 무장한 탈레반 대원들이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동쪽 라그만에서 차량에서 대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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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36시간 안에 소수 핵심 인력을 제외하고 주아프간 대사관 직원의 대피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CBS방송은 이날 전했다. 국무부 외교경호실(DSS) 특수요원, 대사 등 최고위 정책 결정자들만 남게 된다.

이날 AP·로이터 통신 등은 아프간 내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탈레반이 사방에서 카불로 진입하기 시작했지만 “전투는 벌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 등은 탈레반이 이날 성명을 내고 “카불에 무력으로 점령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하고 “평화적인 방안을 놓고 아프간 정부와 협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 대변인은 트위터에 “조직원들에게 카불 입구에 대기하고 입성하진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이날 카불 시내에선 가끔 총소리가 들렸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대변인은 또 앞으로 권력을 장악해도 여성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이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대변인은 “히잡을 쓴다면 여성은 학업 및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며 “여성 혼자 집 밖으로 나서는 것을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간 평화협상 미국 특사 및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고위 관료와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권력 이양을 담당할 과도정부 수반에 아흐마드 자랄리(81) 전 내무장관이 임명될 가능성이 크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미국 내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결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행정부는 애초 이달 말을 미군 철군 시한으로 정했다. 그러나 카불이 조기 함락 위기에 몰리면서 이번 사태가 과거 1975년 베트콩의 사이공(현재 베트남 호찌민) 입성 당시의 상황보다 더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야당인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아프간 주재 미국대사관 직원들의 대피 결정이 내려지자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결정으로 우리는 치욕적인 1975년 사이공 함락의 속편으로 나아가게 됐고, 심지어 상황이 그때보다 나쁘다”고 비판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14일 성명을 내고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트럼프 행정부)가 건네준 계획을 따르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쳤다”며 “이는 나약함과 무능, 총체적인 전략적 모순에 따른 완전한 실패”라고 비판했다.

이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아프가니스탄에 남는 것은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에 대한 공격을 막는 임무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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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전쟁 일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 동맹국은 그간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탈레반과 협상을 진행해 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미 행정부가 탈레반 대표들에게 폭력적으로 지역을 장악하거나 90년대와 같은 가혹한 규칙을 도입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서구의 이런 요구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바이든 대통령은 탈레반이 이달 초부터 세력을 넓혀가자 지난 12일 대사관 인력을 축소하고 미군 3000명을 카불 공항에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1000명을 추가로 보내면서 현지에 남아 있던 병력 650명 이상을 포함해 모두 5000명이 현재 활동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발표한 대로 미군 철군을 이달 말까지 완료해 미국이 참여한 최장기 전쟁을 종식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을 포함해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대통령 2명씩 모두 4명이 아프간 문제를 다뤘다고 상기하면서 “이 전쟁을 다섯 번째 대통령에겐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불 한국 대사관 “상황 급박”=현지 한국대사관도 비상이 걸렸다. 외교부는 현지 정세를 예의주시하며 카불에 남아 있는 공관원과 교민 안전 확보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에는 최태호 대사를 비롯해 소수의 공관원만 남아 있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굉장히 급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지 상황이 악화할 경우 유관국의 협조를 받아 공관원들을 철수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 탈레반(Taliban)

1994년 무함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내전 중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목표로 등장한 무장단체. 파슈토어로 ‘학생들’이라는 뜻. 96년 정권 획득 후 초강경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2001년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다 아프간 전쟁이 발발하면서 정권을 잃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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