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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가해의 역사를 자기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에게 [김민정의 도쿄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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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히토쓰바시대학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



경향신문

광복 76주년이다. 한·일은 여전히 다양한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은 한·일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다. ‘일본인들은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 과거사를 잘 모른다’고 얼토당토않은 정당화를 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재일동포와 한인들이 적지 않다.

K팝을 사랑하는데 좋아하는 아이돌이 마리몬드 제품을 써서,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에 가고 싶은데 부모가 한국을 차별하며 반대할 때, 한국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왜 한국 따위를 좋아하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일본인들도 사실 비슷한 정당화를 한다. ‘아, 저 사람이 한국을 잘 모르는구나. 과거사를 잘 모르는구나’라고.

‘잘 모른다’는 정당화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잘 모른다는 것은 관심이 없다는 것,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의미와 직결되고 나아가서는 차별의 근원이 된다.

사회과학 계통 연구 대학으로 명성이 높은 히토쓰바시대학 학생 5명이 한·일 과거사에 대한 짤막한 입문서를 발간했다. 소개문에 ‘초’입문서라고 적혀 있을 만큼, 한·일 과거사의 기초적인 부분들을 담았다. 대학생이 썼지만 중·고생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일본인들은 ‘대동아전쟁은 일본이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전쟁이 ‘일본을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 정부는 모집의 강제성, 군의 관여성에 중점을 두고 논하지만 외출 자유, 주거 자유, 폐업 자유, 부정(요구를 거부할) 자유가 없던 민족 차별, 젠더 차별, 계급 차별을 바탕으로 한 인권침해, 전쟁범죄를 일본 국가가 추진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적었다.

일본인들은 과거사를 모른다.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배울 기회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저지른 전쟁에 대해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살아왔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식민지 시절 자료를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은 자학사관을 배우는 것이라고 하는데, 식민지와 전쟁에 대해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는 아이들은 지식을 배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배 책임과 전쟁 책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잃게 된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재일동포와 한국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오류들을 지적한 책이다. 아무리 부정해도 역사는 수정할 수 없고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징용 피해자를 ‘징용공’으로 수정했고, 해외의 소녀상 설치를 막고, 일본 탄광에서 일한 조선인들의 역사를 지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 시민들은 과거사는 과거의 일이자 정부가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고만 생각한다.

왜 일본 정치와 정부는 변하지 않을까? 저자들은 말한다. ‘일본인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는 충분히 했다는 일본 정부, 식민지 시절의 가해는 모두 거짓이거나 조선을 위한 일이었고 그것을 입에 담는 것은 ‘반일’이라고 오만하게 꾸짖는 역사수정주의자들, 과거사는 잘 모르지만 일본이 나쁜 짓을 할 리가 없다는 다수의 일본인들, 광복 76주년, ‘패전’을 ‘종전’으로 바꿔버린 나라에서 지금 꼭 읽어야 할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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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재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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