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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장애…우리 없이 우리에 관해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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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서평] 우리에 관하여

뉴스1

우리에 관하여©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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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해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은 이 문장을 1990년대 이후부터 표어로 삼기 시작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최소한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표어는 그 어떤 정책도 해당 정책에 영향을 받는 집단 구성원의 완전하고 직접적인 참여 없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간 '우리에 관하여'는 장애인들의 이런 목소리를 잘 담아낸 책이다. '뉴욕 타임스' 기명 논평연작 '장애'에 실린 60편의 글이 담겼다.

책은 미국 장애인들의 이야기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미국 인구 3억282만명 가운데 약 6000만명이 장애인이다. 5명중 1명꼴로 장애인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구수는 2020년 말 기준으로 263만3000명이며 전체 인구대비 5.1%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장애유형별로 살펴보면 15개 장애유형 분석 결과 Δ지체장애가 45.8%로 가장 많았으며 Δ청각 15% Δ시각 9.6% Δ뇌병변 9.5% 순으로 높았다.

특히 교통사고 사상자도 매년 35만명에 이른다. 비장애인도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은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장애인들이고, 또 하나는 아직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다"라는 적확한 문장에 녹아 있다.

작가 랜디 데이븐포트는 30대때 장애인이 됐다. 그는 장애가 생긴 경험에 대해 "장애는 당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에 관한 모든 것을 대신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해도, 당신이 장애의 존재를 거부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밝혔다.

장애인들은 살아가면서 하나의 사실을 고통스럽게 마주한다. 바로 이 세상이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장애는 그 자체로 고통과 불편함을 초래하지만 이보다 더한 고통은 정서적인 차원에서 온다.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과 차별과 무시로 인해서 말이다.

비장애인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비장애인들의 세상은 장애인의 삶이란 이럴 거라고 멋대로 가정하고 단정 짓는다.

장애인 앤드루 솔로몬은 우리가 알고 생각하는 장애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장애인이 보는 장애는 비장애인이 보는 장애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1920년대 우생학의 영향을 받아 장애인들에게 불임 시술을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1927년 대법관 올리버 웬델 홈스는 판결문에서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기에 명백히 부적합한 이들이 계속 대를 잇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면 그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

앤드루 솔로몬은 이런 사고방식이 허울만 그럴듯한 헛소리라고 했다. 장애가 없는 부모들도 장애아를 낳고, 장애를 가진 부모들도 장애가 없는 아이를 낳기 때문이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여기는 장애인들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솔로몬을 비롯해 공저자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 없이 인간의 정신과 신체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공동체를 요구했다. 학교가 대표적이다. 2020년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개교한 서울서진학교는 지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설립하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서진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지역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의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했지만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2020년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이 개봉하자 학교 설립에 반대했던 지역민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서진학교 사건과 다큐멘터리에서 과연 누구의 명예가 더 훼손된 것일까. 왜 장애인 학교 설립은 왜 지역민의 동의를 구해야 했을까.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일 자체가 이미 장애인들의 명예를 깊이 훼손한 것은 아니었을까. 책은 이런 질문들을 이어가게 만든다.

한편 솔로몬은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학교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비장애인과 함께 다닐 수 있는 일반학교를 원했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분리 교육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며 "이런 통합 교육이 장애아들만이 아니라 장애가 없는 아이들에게도 혜택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했다.

◇우리에 관하여/ 피터 카타파노, 로즈마리 갈랜드-톰슨, 앤드루 솔로몬 지음/ 공마리아, 김준수, 이미란 옮김/ 해리북스/ 2만2000원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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