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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멀쩡한 원전 폐쇄”라 억지 쓰며 최악 치달은 ‘정치 사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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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1호기, 캐나다 ‘4조원 든다‘ 수명 연장 포기한 모델

정부 폐쇄 결정 전, 법원이 먼저 “수명 연장 무효” 판결

경제성 높여잡아도 박근혜 정부 폐쇄한 고리1호기만 못해

야당 ‘인디언 기우제’식 고발 계속, 끝내 기소 이끌어내

집행 과정 꼬투리 잡아 에너지 정책 ‘사법심판대’에 세워

최재형 전 원장·윤석열 전 총장은 ‘대선 디딤돌’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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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주요 정책이 정치적 공론 과정이 아닌 사법 절차에 의해 결말지어지는 ‘정치의 사법화’는 한국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질병이다. 정치세력들은 합리적 논거로 대중을 설득하기보다는 상대를 형사처벌로 몰아가려고 갖은 애를 쓴다. 검찰의 기소를 이끌어내기 위한 고소·고발이 난무한다. 검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의 힘이 비대해지고, 이들이 거꾸로 정치에 개입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월성 1호기’ 원전 운영을 둘러싼 의견 대립이 야당의 ‘인디언 기우제’식 고발 끝에 당시 업무를 맡은 장관에 대한 검찰 기소로까지 이어졌다. 야당의 문제 제기에서 감사원 감사, 검찰의 기소로 이어지는 과정은 논리 비약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 사안을 다룬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통령 선거에까지 뛰어들었다. 정권을 타격한 공을 본인의 정치 디딤돌로 삼은 것이다. 최 전 원장은 4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도 “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제1의 원자력산업 생태계가 무너졌다”며 “잘못된 이념과 지식으로 절차를 무시하고 추진해 온 탈원전 정책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1975년 착공해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고리 1호기에 이어 국내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원전이다. 캐나다의 기술을 도입한, 그리 흔치 않은 가압중수로다.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초기 모델이고, 안전 기준도 낮게 설계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 ‘에너지 전환 로드맵’에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로 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충격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원전들의 부실한 안전 관리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2016년 9월에는 경주에서 규모 M5.8의 지진까지 일어나 노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확산된 뒤의 일이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설계수명(30년)이 다했다. 캐나다에선 같은 모델인 젠틀리 2호기의 수명을 연장하려다 설비 개선에 1조5천억원 등 4조원이 드는 것으로 나오자 포기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금융비용을 포함해 5925억원을 들여 연장 가동을 위한 설비공사를 하면서 2009년 수명 연장을 신청했다.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여론의 거센 반대 속에 2022년까지 ‘수명 연장’을 인가했다.

하지만 안전성 우려는 끊이지 않았다. 재가동한 월성 1호기는 2017년 5월 원자로 건물 부벽에서 콘크리트 결함이 발견돼 다시 멈췄다. 서울행정법원은 최신 기술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중요한 허가 사항을 과장 전결로 처리하는 등 “허가 절차 규정을 위반했다”며 2017년 2월 수명 연장을 ‘무효’라고 판결했다. 월성 1호기는 결코 ‘멀쩡한 원전’이 아니었다. 한수원은 2018년 6월 이사회 의결로 ‘영구 정지’를 요청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9년 12월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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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장을 사퇴한 지 한달여 만에 국민의힘에 입당한 최재형 전 원장이 4일 경기도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최 전 원장은 “탈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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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시비를 감사원으로 가져갔다. 2019년 9월 이종구 자유한국당(현 국민의 힘)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조기 폐쇄 결정이 타당한지, 한수원 이사들의 결정이 배임이 아닌지 감사를 요구했다.

감사원은 2020년 10월 발표한 감사보고서에서, ‘외부 용역을 맡은 회계법인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와 한수원의 압력으로 실제 판매단가보다 낮은 한수원의 전망단가를 사용해 전기 판매수익을 계산’함으로써 “계속 가동의 경제성이 낮게 산정되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평가의 신뢰성을 저해했다’고 했을 뿐, ’조작’이라고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평가 방법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사원이 참고치로 제시한 전망단가 상승률 최대치를 대입해 경제성을 다시 평가해도 224억원에서 1088억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친다. 박근혜 정부 때 영구정지를 결정한 고리 1호기의 경우, “이용률과 판매단가 등에 따라 1792억∼2888억원 이득”일 것으로 분석됐다. 그만도 못하다. 이를 보면 “경제성 평가를 조작해 멀쩡한 원전을 폐쇄했다”는 주장은 억지일 뿐이다.

감사원이 지적했듯 ‘원전 계속가동 평가 기준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은 없다. 한수원 이사회는 노후 원전인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모두 경제성뿐 아니라 안전성도 중요하게 고려해 폐쇄를 결정했다. 감사원은 한수원 이사들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의결한 것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감사를 앞두고 자료를 삭제한 산업부 공무원만 ‘감사 방해’라며 징계를 요구했다.

감사원에 앞서 그해 4월 서울중앙지검도 한수원 노조가 이사들을 업무상 배임으로 고소한 사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을 고발한 사건을 각하하고 불기소 결정했다. 감사원은 ‘에너지 전환 로드맵’에 대한 별도 감사에 대해서도 지난 3월 ‘위법하거나 절차적 하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감사원이 아무도 고발하지 않자, 10여일 뒤 국민의힘이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 등 12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대전지검에 고발했다. 감사원이 ‘경제성 평가에 신뢰가 떨어진다’고 한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측근이 지검장을 맡고 있는 대전지검을 방문했고, 그 며칠 뒤 대전지검은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결국 지난 6월 백 전 장관 등 3명이 경제성 평가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꼬투리를 잡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끝내 ‘사법 심판대’에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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