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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인·태에서 미래 질서 결정된다” 아시아로 동진하는 英·佛·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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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항공모함, 프랑스 상륙함에 이어 독일 3600t급 호위함 파견

조선일보

2일 인도 태평양 지역에 파견된 독일 해군의 호위함 바이에른호. /도이체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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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 시각) 독일 북부 항구도시 빌헬름스하펜. 독일 해군의 3600t급 호위함 바이에른호가 인도·태평양을 향해 출항했다. 약 200명의 수병을 태운 바이에른호는 지중해와 수에즈운하를 지나 인도·호주·동아시아까지 6개월간 항해하고 내년 2월 돌아올 예정이다. 오는 11월에는 남중국해와 서해에도 진입한다. 독일이 남중국해에 군함을 보내는 건 2002년 이후 19년 만이다. 바이에른호는 미국·일본·호주 해군과 연합훈련도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영국은 지난 5월 해군의 중심축인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호(6만5000t급)를 아시아에 파견했다. 프랑스도 4월에 미국·일본·호주·인도와 공동으로 벵골만에서 사흘간 ‘라 페루즈’라는 해상 훈련을 실시했다. 이로써 영국·프랑스에 이어 독일까지 유럽의 3강이 모두 올해 인도·태평양에 군함을 출항시키게 됐다.

세 나라 모두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한결 강경해진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에 동참하고, 동시에 지정학적·경제적으로 세계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조선일보

영국·프랑스·독일의 올해 인도·태평양 해상 군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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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바이에른호 출항식에 참석한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독일 국방장관은 “우리는 동맹국과 함께 우리의 가치와 이익을 위해 깃발을 올리는 것”이라며 “우리 해군은 더 이상 안락한 곳에서 안주할 수 없다”고 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인도·태평양은 미래의 국제 질서가 결정되는 곳”이라고 했다. 독일은 작년 9월 ‘인도·태평양 정책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이 지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겠다고 예고한 적이 있다.

독일의 바이에른호 파견 결정은 미국이 러시아의 힘을 키워준다며 3년 넘게 줄곧 반대해온 ‘러시아-독일 간 천연가스관(노르트스트림2)’에 대한 입장을 최근 바꿔 이 가스관 공사를 허용한 것이 배경이 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에 맞서 서방의 동맹을 공고히 하는 게 우선이라며 반대를 철회했고, 이에 따라 독일은 대중 압박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어떻게든 화답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게다가 독일은 경쟁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가 인도·태평양에 상당한 해상 전력을 파견하며 영향력을 높이는 광경을 더 이상 뒷짐 지고 지켜만 보기 어렵게 됐다. 영국은 브렉시트(EU 탈퇴) 이후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강화하는 무대로 아시아를 선택했다. 영·일 동맹 복원에 공을 들이고 옛 식민지였던 인도와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이 지난 3월 발표한 새로운 안보 전략인 ‘글로벌 브리튼’은 인도·태평양 일대에서 역할 확대를 골자로 하고 있다.

뉴칼레도니아를 비롯, 인도·태평양 지역에 영토를 갖고 있는 프랑스는 이 지역에서 존재감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프랑스 국민은 160만명에 이른다. 프랑스는 지난 5월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 등 대북 제재 위반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강습상륙함 토네르호와 호위함 쉬르쿠프호를 동아시아에 보내기도 했다.

영국·독일·프랑스가 인도·태평양으로 동진(東進)하는 배경에는 중국의 ‘난폭한 부상(浮上)’을 저지하며 이 지역이 미·중 패권 경쟁 무대로 굳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또한 세계경제의 무게중심이 대서양에서 인도·태평양 쪽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뚜렷해지자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아야 한다는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 외교부는 “인도·태평양 일대에서 무역과 투자의 비중이 커지며 세계화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유럽의 강국들이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데 대해 반발하며 경계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청나라가 몰락하던 19~20세기 유럽 국가들의 중국 진출과 결부시킨 비판도 나온다. 중국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영국·프랑스는 아시아·태평양에서 식민 제국이었다”며 비난했다.

이 매체는 “자국의 이익을 좇는 유럽 국가들이 미국이 원하는 대로 무작정 동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는데 실제로 이들 국가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필요 이상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유럽에는 중국보다는 러시아가 더 위협적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그래서 지난 6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존슨 영국 총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나란히 바이든 미 대통령의 대(對)중국 강공론에 맞서 ‘수위 조절론’을 펼쳤다. 바이에른호를 파견한 독일 국방부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대결을 조장할 계획이 없으며, 누구나 항해할 수 있는 상업 항로를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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