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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물 마시자마자 갈증 해소? 뇌가 만들어낸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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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70년대 남부 아프리카 로디지아 군대에서 복무했던 남자는 게릴라를 색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어느 날 아침 숲속에서 병사들과 훈련하던 그는 어떤 움직임을 감지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자 바로 앞에서 위장하고 총을 든 게릴라들이 길게 늘어선 게 보였다. 본능적으로 소총을 들어 안전장치를 푼 뒤 돌격용 소총인 AK-47을 들고 있는 선두를 겨냥했다. 별안간 그는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을 느꼈다. 등 뒤에 있던 동료가 작은 소리로 "쏘지 마, 그냥 아이잖아"라고 말린 것이다. 소총을 내리고 현장을 다시 보자 열 살 남짓한 소년 하나가 길게 늘어선 소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 뒤 몇 년 동안 남자는 이 찝찝한 사건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뇌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걸까. 하지만 그의 뇌는 정상이었다. 몸을 제어해 생존하게 만드는 게 우리 뇌의 가장 중요한 일이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눈·코·입 등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세계로부터 수신하는 데이터는 빗발치는 광파와 화학물질, 기압 변화에 불과하며 본질적 의미는 없다. 그래서 뇌는 추가 정보원인 기억을 활용한다. 심장이 쿵쾅거리자 위험을 인지하고 숲속 게릴라를 떠오르게 한 것이다.

신경과학자인 리사 팰트먼 배럿은 저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을 통해 "뇌는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검색해보고, 한 번에 수천 가지를 추측하고, 그 확률들을 측정하며 '이 빛의 파장이 무엇과 가장 비슷한지' 알아맞히려고 애쓴다"고 강조한다. 이 모든 작업은 당신이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고 한다.

그는 뇌가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을 예측한다고 주장한다. 물을 마시면 몇 초 이내 갈증이 줄어드는 현상이 그 예다. 실제로 물이 혈류에 도달하려면 20분 정도가 걸리지만, 뇌는 물을 마신 후 결과를 예상해서 먼저 느끼게 해준다.

뇌가 세상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예측하고 있다면 당신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저자는 "바로 당신"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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