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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팩트체크]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은 사촌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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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기본소득 논쟁]⑤ 이재명 주장에 유승민 "남남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한다는 뿌리는 같지만
지급방식·재원조달 방안에서 큰 차이


매일경제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오른쪽)[사진출처=연합뉴스]


내년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기본소득이 대선 주자들이 거쳐가야 할 필수 의제가 됐다. 기본소득·공정소득·안심소득 등 이름은 다르지만 4차산업혁명과 일자리 구조의 변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복지 체계 전반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후보군이 동의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본소득 주장을 일찌감치 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25일 페북에 올린 글에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공정소득은 '부의 소득세'의 일종이고 기본소득의 사촌쯤 될 것"이라고 표현한 데 대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공정소득을 대선 아젠다로 제시한 유승민 전 의원은 다음날인 26일 공정소득과 기본소득은 "사촌이 아니라 남남"이라고 받았다.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은 '사촌'지간일까. 이 지사는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은 "유사한 정책"이라면서 "어느 것은 공정하고 어느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면 국민들께선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이 유사한 정책인지를 두고 사실관계를 따져봤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기본소득과 음의소득세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이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인간 작업을 대체하고 일부 고숙련 일자리만 남게 된다는 전망이 있다. 이 경우 국가 전체적인 생산성은 인공지능에 의해서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중산층이 기존에 종사해왔던 전통적 직업체계가 무너지게 되면서 극단적 양극화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서 소비능력 자체가 떨어져 증가된 생산성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이재명식 기본소득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강남훈 한신대학교 교수는 저서 '기본소득의 경제학'에서 이같은 상황에서 "늘어난 생산량을 최대한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로 대표되는 공정소득론 개념을 기술한 '경제정책 어젠다2022'에서 변양호 VIG 파트너스 고문 역시 같은 경우를 전망하면서 "생산성은 높아지지만 실직자가 많아지면 제품을 사줄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두 정책의 뿌리가 같다는 점에 대해서도 양 진영이 크게 이견은 없다. 공정소득의 기초가 되는 '음의 소득세'를 주창한 밀턴 프리드먼은 "기본소득이 음의 소득세를 실시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표현했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을 연구 개발하는 경기연구원 역시 "미국의 기본소득 네트워크는 음의 소득세와 기본소득을 합해 기본소득보장(Basic Income Guarantee)라고 부르고 있다"고 적시했다.


기본모델과 지급방식은 달라


하지만 같은 전제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이 내놓는 해법의 방향성은 다르다는 게 중론이다. 먼저 누구에게 얼만큼을 지급할지에 대해서는 보편지급과 선별지급으로 극명히 갈린다.

이재명 지사가 제시한 기본소득은 "모든 소득층에게 매달 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보편지급 모델이다. 지급액의 최종 목표는 1인당 월 50만원으로 도입 초반부에는 이보다 적은 금액을 지급하고 차차 늘려나가는 방식이다.

매일경제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NIT) 기본모형


공정소득은 "기준 소득 이상의 소득층에게서만 세금을 걷어, 기준소득 이햐의 소득층에게는 과세없이 지급만" 하는 선별지급형 모델이다. 이석준 전 실장과 김낙회 교수가 '경제정책 어젠다'에서 저술한 모델, 유승민 전 의원의 공정소득 설계를 돕고 있는 유경준 의원에 따르면 최종적으로 기준 소득을 연간 1인당 소득 1200만원으로 설정했다. 이보다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는 현재 소득에서 기준 소득을 뺀 금액에 현행 소득세율(15~42%)을 적용해서 걷는다.

반면 기준 소득보다 적게 버는 소득층은 기준 소득(1200만원)에서 현재 소득을 제외한 금액의 50%를 현금으로 지급받는다. 소득이 0인 사람은 (1200-0)×0.5로 연 600만원, 월 50만원을 지급받게 된다. 연소득이 1000만원이라면 연 100만원을 받는다.

지급대상 등에서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은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재원 조달 방식에서도 차이


뿐만 아니라 소득 지급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것인가에 대한 차이 역시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기본소득은 장기적으로 탄소세, 토지세 등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서만 쓰이는 목적세를 신설해 재원을 충당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또 강남훈 교수와 이한주 경기연구원장 등 이재명식 기본소득 설계자들이 제시한 모델에 따르면 기존의 소득세를 인상해, 모든 소득층이 같은 비율의 소득세를 추가로 납부하게 한다.

반면 공정소득은 목적세 신설 없이 기초연금, 생계급여, 아동 수당 등 기존 사회안전망의 통폐합으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경제정책 어젠다 2022'모델에 따르면 보건복지·노동·고용·건강보험 등 13개 분야에 더해 연구개발·에너지·농림 분야 등 현금성 급여가 아닌 분야의 지출 구조조정이 포함된다. 유 전 의원이 준비중인 모델 역시 어린이집 보육료, 가정양육수당 등 필수적인 복지체계를 제외한 현금성 급여 통폐합을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기존 복지체제보다 받는 금액이 줄어드는 경우는 없도록 하겠다"는 원칙도 함께 제시했다. 통합대상 사업 중 하나인 생계급여의 경우 기존 생계급여가 지급될 공정소득보다 높을 경우 그 차이만큼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생계급여의 1년 예산인 4.3조가 통합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소득의 대체로 발생하는 손해(1.5조)를 제외한 2.8조만 통합의 대상으로 반영한다.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은 재분배 효과


지급 방식과 재원 마련 계획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과 공정소득 간의 '사촌지간' 논쟁이 발생한 이유는 재분배의 효과가 유사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 때문이다. 대학 강의교재로 자주 쓰이는 '멘큐의 경제학'의 저자 그레고리 멘큐는 'Combating Inequality’라는 공저에서 제시한 실험을 통해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음의 소득세)간의 유사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가 번역 및 분석해 지난 6월 7일 서울대 경제학부 게시판에 공개한 글을 살펴보자. 멘큐는 A와 B 두 그룹을 설정했다. A그룹은 가난한 사람만을 골라내 보조금을 지급하고, 스스로 번 소득이 0인 사람에게는 연간 1만2000달러를 지급한다. 스스로 번 돈이 1달러 늘어날 때마다 보조금을 0.2달러씩 줄여나간다. 기준소득은 6만달러로 잡고, 소요 예산은 연간 소득이 6만달러를 초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초과분에 대해서만 20%의 세율로 세금을 걷어 충당한다.

B그룹은 모든 사람에게 소득과 관련 없이 연간 120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소요 예산은 모든 소득층에게 20%의 세율로 부과한 조세수입으로 충당한다. A그룹은 공정소득, B그룹은 기본소득을 간단하게 모듈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멘큐는 이 경우 개인별로 정부에서 받는 돈에서 정부에 내는 돈을 뺀 금액을 계산하면 결국 A와 B의 경우에서 각 소득층이 받게 되는 돈은 똑같아진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계산을 바탕으로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은 재분배 효과가 같아 유사하고, 따라서 사촌지간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반면 유 전 의원의 공정소득론 진영에서는 위의 실험에서 20%로 제시한 '단일세율'에 대한 명제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대권주자들 사이에 논의되는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의 유사성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유 전 의원과 함께 공정소득을 설계하고 있는 유경준 의원은 "우리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소득세율을 적용시키는 단일세율 체계가 아니라 누진세율 체계"라고 주장했다. 전제부터 한국형 기본소득 논의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지사가 기본소득을 계속 주장할 셈이라면 단일세율 체계를 지지하고 공약으로 제시할 수 있는지 입장을 밝혀라"고 했다.

실제로 이 지사는 지난 22일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하면서 재원으로 토지세, 탄소세, 예산절감 등을 제시했을 뿐 소득세를 단일세율로 인상하겠다는 주장은 내놓지 않았다. 단일세율 소득세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이 유사하다는 주장의 전제가 되는 멘큐의 실험결과 역시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두 정책의 유사성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 의원은 "한국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은 유사성이 없다"면서 "그나마 공정소득의 기초인 음의소득세와 기본소득의 공통점을 맨큐 실험에서의 재분배 효과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지사 측은 단일세율 언급은 물론 소득세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과 공정소득이 사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같은 인류에서 출발했다고 백인과 흑인, 황인이 모두 같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고 비판했다.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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