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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김명인 칼럼] 20세기 선진국 vs 21세기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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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끝났다. 이제 모든 성장은 부와 이윤의 무한대 증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구체제의 전반적인 위기를 해소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망외의 소득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무한대의 성장을 전제로 허용되던 부의 무한 추구와 불평등도 이제 끝나야 한다. 이제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분배다. 세계 10% 상위층들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부의 총량은 지구가 망할 때까지 10%도 다 못 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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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한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7월2일 한국을 개발도상국 집단인 A그룹에서 선진국(advanced country) 집단이라고 하는 B그룹으로 이동 편입시켰다고 발표했다. 이 기구가 주로 남북문제, 즉 서구 중심의 선진국들과 비서구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 사이의 무역불균형 해소와 저개발국의 경제개발 촉진을 위해 설립된 기구인 만큼 우리가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설움을 벗어난다는 의미도 없지는 않지만 이제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서 더 이상 받는 나라가 아니라 주어야 하는 나라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무거운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하긴 이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는 말은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이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를 차지했고,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개발원조위원회 등에서는 이미 한국을 선진국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지 오래다. 이번 유엔무역개발회의의 결정을 포함해서 이상의 선진국 기준이 전부 경제 규모와 관련된 것이라 정치, 경제, 문화 등 좀 더 전체적 수준에서도 선진국일 수 있겠느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유엔개발계획(UNDP)이 수립한 실질국민소득, 교육수준, 문맹률, 평균수명 등 삶의 질 부문을 모두 포함한 인간개발지수(HDI) 순위에서 작년 기준으로 23위에 자리한다고 하니 대략 상위 10%에 해당하는 20위권을 선진국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이 적어도 통계적으로는 선진국에 속한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외에도 대한민국의 ‘선진국화’를 입증할 만한 사례들은 적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세계적 재앙 상황 속에서 적지 않은 선진국들이 자기 사회의 저열한 민낯을 만천하에 들키고(?) 있는 중이지만 우리나라는 발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감염병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고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 사회적 통합력, 시민의식 등 여러 측면에서 선진적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그동안 한국 사회가 교육, 보건의료, 치안, 교통 등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오랫동안 축적해온 역량과 정보기술(IT) 산업 분야의 선도적 발전이 자연스럽게 결집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류’로 통칭되는 대중음악, 영화, 티브이 콘텐츠, 패션, 음식문화 등의 글로벌화가 최근 들어 점점 더 가속되고 있는 것도 이제는 몇몇 천재적인 재능에 빚지고 있는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에는 그 규모와 지속성 면에서 과거의 ‘어쩌다 쾌거’들과는 달리 확실히 세계 최고 수준과 궤도에 올라섰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이제 과연 어디다 내놓아도 꿀릴 것 없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인가? 아직 멀었다는 입장에서 제출하고 있는 통계와 의견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최신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전체 37개 회원국 중에서 연간근로시간 36위, 자살률 1위, 여성에 대한 처우 37위, 출산율 37위, 산재 사망률 1위, 국가행복지수 35위 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상위 10% 집단이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가는 극심한 빈부격차의 나라로 주요 50개국 중 3위권에 든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2017년, 한국노동연구원).

무엇보다 이런 통계자료가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특히 팬데믹 이후 심화된 공황상태에 가까운 고용위기나 중소자영업자들의 몰락, 부동산 가격의 폭등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통계로 잡히지 않는 사회심리적 불안 상태와 누적된 스트레스의 사회적 하중 등을 생각하면 때아닌 유엔기구발 선진국 논의가 허망하고 낯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헬조선 담론이 성행하던 것이 겨우 10년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부의 축적과 전반적인 물질적 인프라와 생활수준 또는 만족도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전통적인 의미의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다고 본다. 오히려 이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의식적으로라도 강조되고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각인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은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으니 후진국이나 개도국일 때와 같이 열등감 혹은 자기모멸에 빠지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자거나, 아니면 국가에 대해 무리한 요구나 불만을 표출하지 말고 자기 직분에 충실하라고 하거나 하는 보수 기득권 지배계급의 논리를 내면화하자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나라가 이제 선진국이 되었으니 사회·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으로서의 국격에 맞는 삶과 체제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도달하는 것을 사회 구성원 전체의 목표로 설정하여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선진국의 조건은 무엇인가? 지난 20세기 선진국의 조건은 이윤을 창출하는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지속성, 즉 경제성장의 일국적 지속성 여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 선진국의 조건은 상대적 부의 축적은 기본값으로 하더라도 이제는 그 바탕 위에서 개별 국가의 성장의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세계·지구 전체의 삶의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국 내의 불평등 해소와 삶의 질 향상은 물론이거니와 그에 더하여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예측불가능한 자연·사회적 재앙에 대한 전면적이고 신속한 대응과 세계적 규모의 부의 불평등 해소와 삶의 질 개선을 통한 인류 전체의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 또 과연 그럴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가 곧 선진국의 조건이다.

성장은 끝났다. 이제 모든 성장은 부와 이윤의 무한대 증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구체제의 전반적인 위기를 해소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망외의 소득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한대의 성장을 전제로 허용되던 부의 무한 추구와 불평등도 이제 끝나야 한다. 이제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분배다. 세계 10% 상위층들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부의 총량은 지구가 망할 때까지 10%도 다 못 쓴다. 이제는 나누어야 할 때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이제 선진국이 되었으니 더 이상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부자들의 곳간을 열어 병든 지구환경을 개선하고,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빈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지속가능한 지구·인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일들에 모든 축적된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나는 피를 흘리지 않고 이런 대전환을 이룰 수 있는가 여부가 우리가 20세기형 선진국을 넘어 21세기에도 선진국일 수 있는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도전적인 일이다.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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