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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 죽으면 책임질거냐” 항의에 도쿄올림픽 테니스 경기 시간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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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올림픽 테니스 경기 시작 시간이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로 변경됐다. 살인적인 폭염에 기권하는 선수가 나오고서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조직위원회가 뒤늦게 조치에 나선 것이다. 도쿄도(東京都) 고토(江東)에 있는 올림픽 테니스 코트의 온도는 한낮의 햇볕을 받으면 최대 50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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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파울라 바도사 선수가 2021년 7월 28일 테니스 여자 단식 8강전에서 체코의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 선수를 상대로 경기를 펼치던 도중 기권한 뒤 휠체어를 타고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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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테니스연맹(ITF)은 29일 성명을 발표하고 “IOC, 조직위원회 등과 논의한 끝에 선수들의 건강을 고려해 경기 시작 시간을 이날부터 오후 3시로 연기한다”며 “테니스는 전 세계 태양 아래서 열리는 스포츠이나, 올해 도쿄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직면한 고온다습한 환경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밝혔다.

전날 남자 단식 3회전에 출전한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경기 도중 심판에게 두 차례나 메디컬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치료 중, 주심이 경기가 가능한지 묻자 그는 “나는 싸움을 포기 않는 전사다. 매치는 끝낼 것”이라면서도 “내가 죽게 되면 그 책임은 ITF가 지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메드베데프는 이날 2:1로 경기를 끝낸 직후 NHK와 인터뷰에서 “1세트부터 숨쉬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 이런 습도는 경험한 적이 없을 정도로 심장이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며 “오늘이 내게 가장 괴로운 날이었다”고 말했다. CNN은 “도쿄 아리아케 테니스 파크의 코트는 지독하게 덥다”며 “수요일 도쿄의 기온은 31도였지만 무더위와 습도로 체감상 37도에 달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여자 단식 준준결승에선 스페인 대표팀 파올라 바도사가 열사병 증세를 겪고 기권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메디컬 타임아웃을 요청해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휠체어에 실려 경기장을 벗어났다.

지난 24일 세르비아 테니스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도 남자 단식 1회전을 마치고 “지금까지 경험한 더위 중 가장 혹독하다”며 경기 시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조코비치는 이날 경기 시간 연기 결정 발표를 듣고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좀 더 일찍 정해졌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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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적 다닐 메드베데프 선수가 2021년 7월 28일 이탈리아의 파비오 포니니 선수와 테니스 남자 단식 3회전 경기를 펼치던 도중 더위를 식히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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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일본 매체 아레아는 무더운 한낮에 테니스 경기가 치러지게 된 배경엔 IOC에 중계권료를 지불한 미국 방송국의 “무언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한 방송 관계자는 아레아에 “테니스 경기는 그동안 미국 시청자가 가장 많은 황금시간대에 맞춰 열렸다”며 “통상 여름에는 저녁 시간에 경기가 열린다. 하지만 IOC가 거액의 중계권료를 받은 탓에 미국 방송사에 끌려다니며 선수들의 컨디션은 뒷전 취급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일본올림픽위원회(JOC)가 진정으로 선수들을 생각했다면 컨디션을 고려해 시간대를 변경해야 한다고 맞섰어야 했다”며 “그들은 온도와 습도가 높은 시간대에 경기를 진행하면 선수들의 컨디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ITF의 결정을 계기로 다른 종목 경기 시간도 늦춰질지 주목된다. 러시아 국적 양궁 선수 스베틀라나 곰보에바는 지난 23일 예선 경기를 끝낸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열사병 진단을 받았다.

스케이트보드 남자 스트리트 종목의 ‘절대 강자’로 꼽혔던 미국 선수 나이자 휴스턴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선 7위에 그쳤다. 그는 이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너무 더워서 보드가 휜다. 쉽지 않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박수현 기자(htinmaki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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