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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 휴대폰에만 편리한 앱… ‘IT 강국’에 글로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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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친구들의 백신 접종 예약 실패담으로 도배됐다. “접수 시작할 때 2000명 대기였는데 접속이 끊겨 재접속했더니 내 앞에 10만명이 있더라”는 식의 경험담이었다. 2010년 오바마케어 출범 때 미국의 사이트도 장시간 다운되었으니 어느 나라든 정부가 민간보다는 무능하다는 말도 되겠지만, 첨단 테크가 약동하는 2021년의 모습으로는 하여간 부끄럽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스스로를 ‘IT 강국’이라고 한다. “한국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도 휴대폰이 터져서 놀랐다” “주민등록등본을 지하철역 키오스크에서 발급해주더라”는 해외 교포들의 칭송은 이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가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국민 앱으로 불리는 모바일 메신저가 있다. 이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우버 같은 경험이 가능하다. 그런데 미국에 살지만 한국 국민인 필자는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해외 전화번호로 가입한 앱은 결제 수단이 등록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앱을 설계할 때부터 한국 휴대폰 번호를 가진 사람만 고려하고 만든 것이다. 미국의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는 미국에서 내려받은 앱 그대로 한국이나 일본에서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한국의 구글’에 해당하는 한 앱을 쓸 때는 원하는 기능을 못 찾아 자주 헤맨다. 모바일·웹 서비스를 창업해본 필자에게도 어렵다면 IT에 밝지 않은 사람은 더할 것이다.

한국은 테크 서비스의 개별 요소를 잘 만든다. 하지만 전체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데는 서투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한국인 개개인의 영민함에 있다고 본다. 대다수 사용자의 인텔리전스(지능)가 높으면 복잡한 시스템도 알아서 잘 굴러간다. 사용자들이 잘 이해하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처럼 말이다.

대표적인 게 PC 온라인 뱅킹과 각종 관공서 사이트다. 국내에서 보안이라는 명목하에 무거운 프로그램을 여러 개 깔도록 만든 시스템이 10여 년간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랑스러운 고속 인터넷을 다른 나라보다 너무 빨리 깐 탓이다. 느린 인터넷을 쓰는 나라라면 프로그램 다운받다가 인터넷이 끊길 것을 우려해 그런 식의 서비스 설계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적이든 개인적이든 한때의 성공 요인이 나중에 발목을 잡는다.

잘 디자인된 시스템은 효율과 확장성을 갖는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코로나 입국 방역 시스템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놀랍지만, 이는 공무원과 자원봉사자의 지능과 헌신적 근무를 전제로 한다. 한국 방문자가 10배 많아지면 공무원도 그만큼 늘어나야 유지 가능한, 확장성이 떨어지는 시스템이다. 잘된 디자인이 아니다.

이젠 “우리는 대단하다”는 자화자찬보다는 사람을 덜 투입해도 운영이 가능한 시스템 설계 능력을 갖추는 것을 장기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주민등록등본 발급을 쉽게 만들려고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대신 주민등록등본 제출을 최소화하도록 전체 프로세스 설계를 바꾸는 것이 낫다.

우리는 선진국이고 한국인의 강점은 전 세계 누구나가 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개별 참여자의 지능이 높지 않아도 원활히 돌아가고, 외국인도 한국인처럼 편하게 쓸 수 있으며, 사람 손이 덜 가도록 설계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익숙해도 다른 이들에게 불편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모두의 근면성을 전제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vs. 세계’의 마음보다는 ‘세계의 부분집합으로서의 한국’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환경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공감력을 키우자. 운영자가 조금 게을러도 운영되는 시스템을 만들자. 한국 휴대폰 번호가 없는 사람도 한국의 편리함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말이다.

[김범수 트랜스링크 인베스트먼트 매니징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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