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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어리다고 반말하면 손님 아니고 ‘손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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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얼마야?” 반말하는데도 생글생글 웃으며 맞던 알바생

“손님은 神” 말에 “신은 죽었다”던 만화 속 알바 ‘니체 선생’ 생각나

알바생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 반말 ‘손놈’들 언제쯤 사라질까

편의점에 자주 간다. 마트만큼이나 맥주가 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반말을 하는 걸까?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야, 이거 얼마야?”라고 하면 통쾌한 기분이 드나? 나이가 어린 사람한테는 반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장유유서의 나라에 사니 본인을 어른으로 ‘셀프 대접’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손님이라서? 손님은 왕이니까?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용어가 있다고 들었다. 손놈이다.

내 일은 아니지만 “왜 반말하세요?”라고 묻고 싶은데, 생각뿐이다. 난 용기가 없다. 그렇게 말했다 돌아올 각종 후환이 두렵다. 몸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나는 주짓수 유단자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 말 못했다. 이렇게 글로나 쓰고 있다. 내 비겁함을 부끄러워하며 말이다. “야, 이거 얼마야?”라던 아저씨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3500원입니다”라고 응대하던 여자 알바생 생각도 했다. 그녀는 왜 웃었던 걸까? 웃지 않고 기계적으로 대하는 걸 봤다면 이토록 찝찝하진 않았을 것이다. 왜 손님 아닌 ‘손놈’에게 웃어준 거죠?

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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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놈 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저런 손놈들을 하루에 몇 놈이나 볼까라고 말이다.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걸까? 설마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아니겠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더 문제다. 감정의 회로가 망가진 거니까. 아니면 고도의 정신 수양을 하고 있는 건가? 미소는 친절의 기호이기도 하지만 미소 짓는 이를 위한 방패라는 걸 아는 걸까? 웃지 않는 사람보다 웃는 사람이 강하다는 걸 아는 걸까? 알바생은 내게도 손놈에게 했던 말투와 다름없는 말투로 대했다. 미소는 화사했고, 눈매가 깊었다. 단단함이 느껴졌다.

‘니체선생’이라면 세게 나왔을 것이다. ‘손님은 신 같은 존재’라는 아저씨 손님에게 ‘신은 죽었다’라고 하는 게 니체선생이니까. 니체선생은 누군가? 독일의 철학자 니체를 말하는 건 아니다. 콧수염만큼이나 니체를 유명하게 만든 말 ‘신은 죽었다’로 손놈들을 응대해 ‘니체선생’으로 불리는 만화 속 편의점 알바 젊은이다. 어디 그뿐인가. 택배를 맡기며 택배가 언제 저쪽에 도착하는지를 역시 반말로 묻는 손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귀하께서 소지하신 스마트폰은 고급 장식품인지요?” 역시 반말로 펜을 빌려달라는 손님에게는 글자가 사라지는 펜을 빌려주고, 장난 전화에는 ‘반야심경'을 왼다. 만화 속에선 ‘반야심경'이 악귀를 물리치는 경전이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트위터로 연재되다 2013년 만화로 출간되었는데, 초판이 빠르게 매진되며 최단기간에 100만부를 돌파, 2016년에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소위 사토리 세대라 불리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의 열렬한 호응이 있었다. 본인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라는 뜻의 일본어로, 자동차, 사치품, 해외여행 같은 소비에도 또한 돈과 출세에도 관심이 없는, 야망 없는 세대라는 의미로 이들을 사토리 세대라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 니체선생처럼 손놈을 응대하는 알바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욕망 없는 세대라고는 해도 최소한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살아가려면 편의점 일자리를 지키는 게 우선이니 말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 게다가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일본에서 손님은 무려 신이었다. ‘손님은 왕이다’도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손님은 신이다’라니 알바생이 얼마나 고될까 싶다. 정말로 본인들이 신인 줄 알고 ‘오바’하는 손놈들 때문에 일본의 어느 술집에서 이런 해결책을 냈었다고 한다. ‘야, 생맥주’는 한 잔에 1000엔, ‘생맥주 한 잔 가져와’는 500엔, ‘생맥주 한 잔 주세요’는 380엔. 380엔이 원래의 가격이라고. 이렇게 써놓기는 했지만 ‘야, 생맥주’라고 해도 정말로 1000엔을 받는 건 아니라고 한다. 또 ‘손님은 신이 아닙니다’라는 글귀도 벽에 붙였다고 한다. 니체선생이라면 뒤에 한 문장 더 적었을 것이다. ‘손님은 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은 죽었습니다’라고.

도서관에 갔다가 이렇게 적힌 문장을 봤다. “타인의 감정을 존중해 주세요. 직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반말, 욕설, 성희롱 등의 언행은 하지 말아 주세요.” 경고당하는 처지가 유쾌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더 조심하게 된다. 편의점 계산대 앞에도 이런 걸 붙이면 어떨까 싶다. 니체선생식으로 쓸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귀하께서 소지하신 머리가 저급 장식품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이렇게!

[한은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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