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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정부 자존심 싸움에 ‘88%’ 절충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추경안과 상임위원장 배분 등을 논의하기 위해 23일 여야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가 회동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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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여야는 고소득자를 일부 제외하고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합의했다. 여야 합의 과정에서 일부 사업 지출이 늘면서 전체 예산 규모는 정부 안(33조원)보다 1조9000억원 늘어난 34조9000억원으로 결정됐다.
최대 쟁점이었던 재난지원금은 기존 소득 하위 80%보다 지급 대상을 늘리되 고소득자는 제외하기로 했다. 또 역차별 논란이 일었던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지급 기준도 높인다. 지급 금액은 원래 정부안인 1인당 25만원을 유지한다.
1인 가구는 은퇴한 노인 가구 비율이 높아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의 소득 수준이 다른 가구에 비해 낮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원래 정부 안 대로면 연봉 약 4000만원(월 소득 329만원) 이상이면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야 합의안에서는 이 기준을 연봉 5000만원 수준으로 높였다. 또 맞벌이는 다른 가구보다 인원을 한 명 더해주는 방식으로 지급 기준을 높이기로 했다. 예를 들어 맞벌이 4인 가구이면 홑벌이 5인 가구 지급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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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5000만, 맞벌이 2인 8600만원 기준
연소득 기준으로 ▶1인 가구 5000만원 ▶맞벌이 2인 가족 8600만원 ▶맞벌이 4인 가족 1억2436만원 ▶외벌이 4인 가족 1억532만원 등이다. 이에 따른 지급 대상 규모는 1인 가구 860만, 2인 가구 432만, 3인 가구 337만, 4인 가구 405만 등 전체 2030만 가구로 추산됐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 범위는 소득 기준 80%에서 88%로 늘어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당초 정부는 소득 상위 20%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벌이가 오히려 늘었다며 재난지원금 지급을 반대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 지급으로 선회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전 국민 지급을 강행할 경우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사퇴할 수 있다며 배수진을 쳤다는 말까지 흘러나온 끝에 ‘88%’ 지급이라는 절충점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별'도 '보편'도 아닌 어정쩡한 기준이 적용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상 전 국민 지급에 가까운 선별 지급 방침을 정하면서 어느 쪽의 장점도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 국민에게 다 주느냐, 88%에게만 주냐는 사실 큰 차별성이 없다”면서 “오히려 이런 논쟁으로 생긴 사회적 갈등, 또 지급 대상 선별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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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지원은 예상보다 적게 늘여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이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4차 대유행으로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깊어지자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 피해 지원 대상과 액수를 늘리기로 합의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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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지출이 늘면서 다른 사업 예산은 당초 예상보다 축소됐다.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 등에게 지급하는 희망회복자금은 최대 지급 금액을 기존 9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늘렸다. 관련 예산도 기존 정부 안(3조300억원) 보다 약 1조원가량 증가했다. 다만 원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의결한 최대 3000만원 지급안보다는 축소된 수준이다. 소상공인 손실 지원 제도 관련 예산도 원래 정부 안(6000억원) 보다 6000억 더 늘리기로 했지만 4000억원 증액에 그쳤다.
논란이 컸던 ‘카드 캐시백’ 제도는 우여곡절 끝에 유지됐다. 대신 사업 규모는 일부 축소했다. 원래 정부는 소비 진작을 위해 하반기 카드 증가액의 10%를 ‘환급(캐시백)’ 해주겠다면서 1조1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었다. 하지만 여야 합의에서 4000억원이 삭감됐다. 지급 규모도 줄 것으로 보인다.
캐시백이 논란이 됐던 건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진작책을 쓰는 게 방역 정책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였다. 하지만 기재부는 소상공인 지원책이라며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무리 소비 진작책을 써도 코로나19 상황이 잡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면서 “카드 캐시백이 아니라 차라리 방역 관련 예산을 늘렸어야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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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갚으며 1.9조 증액…'조삼모사' 논란도
2조원 국채 상환 예산도 원안대로 유지됐다. 다만 전체 추경 예산 규모를 원래 기재부 안보다 1조9000억원을 증액하기로 하면서 '재정 건정성' 확보라는 당초 명분이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으로 빚을 갚는데 2조를 쓰면서 다른 한편에선 그만큼 지출을 늘린 셈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서로 명분을 주고 받는 식으로 합의점을 도출한 결과라는 평가다. 다만 정부는 1조9000억원의 증액은 자체 사업 조정을 통해 적자 국채 발행 없이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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