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월주(月珠) 큰스님(사진)이 22일 열반했다. 법랍 68년, 세수 87세.
조계종은 월주 스님이 이날 오전 9시 45분쯤 자신이 조실로 있는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입적했다고 발표했다. 스님은 최근 폐렴 등으로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새벽 금산사로 옮겨 마지막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스님은 서울 중동중학교에 다니다 6·25전쟁 발발로 중퇴하고 낙향했다. 금오 스님을 계사로 법주사에서 1954년 사미계를, 1956년 비구계를 받았다.
스님은 1961년부터 10여 년간 금산사 주지를 맡아 불교 정화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개운사 주지, 총무원 총무부장, 중앙종회의장 등 종단 주요 소임을 맡았다.
스님은 10·27 법난의 피해자였다. 신군부가 집권한 1980년 제17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스님은 전국 사찰에 군사력이 난입하면서 강제 연행됐고 총무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10·27 법난은 1980년 당시 합동수사본부(본부장 노태우 보안사령관)가 '불교계 정화수사계획'에 따라 조계종 스님 등 153명을 강제 연행하고 군경 병력 3만2000여 명을 투입해 전국 사찰과 암자 5731곳을 일제 수색한 사건이다. 당시 합수단은 월주 총무원장 등 45명을 체포해 강제로 소임에서 물러나게 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10·27 법난을 '특정 종단에 대한 국가권력 남용의 대표적 사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월주 스님은 법난 이후 미국 등 해외를 돌아다니며 한국 불교의 방향성을 고민하다가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라는 개념을 들고 복귀했다.
사회운동에 뛰어든 스님은 복지, 남북평화 등 여러 부문에서 활동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스님은 1994년 당시 의현 스님이 총무원장 3선 연임을 강행하다가 반발에 부딪혀 물러난 뒤 출범한 조계종 개혁회의에 참여해 종단 개혁을 이끌었다. 같은 해 치러진 총무원장 선거에서 재선되며 14년 만에 총무원장직에 복귀했다.
총무원장직에 복귀한 뒤에도 불교의 대사회운동을 추진했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을 설립했다.
스님은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2003년 국제개발협력 NGO인 지구촌공생회를 세워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 식수, 교육, 지역개발사업을 폈다. 한국에서 죽어간 이주노동자를 위해 천도재도 열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8년에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지난해 '나눔의 집'이 후원금 유용과 할머니 학대 사건에 휘말리면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사건은 오점으로 남았다.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모란장을 수훈하고 만해대상, 대원상, 조계종 포교대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 등이 있다.
장례는 종단장으로 엄수되며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 오전 10시에 거행된다. 빈소는 금산사, 서울 조계사와 영화사에 마련된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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