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휴머니즘·K폭력
세계사를 기술할 때면 중앙아시아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중앙아시아는 기후가 척박해 유목민이 거주했고, 그저 문명이 교차하는 실크로드가 존재했을 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미국 출신 중앙아시아 연구자인 저자는 이 같은 생각이 편견이라고 반박한다. 개방성과 관용성을 바탕으로 탐구적이고 박식하며 자신감 있는 '길목문명'(Crossroads Civilization)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또 역사적으로 이슬람 문명의 진정한 요람은 아라비아반도 주변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였다고 강조한다.
그는 서기 1000년 전후 400∼500년간이 중앙아시아의 전성기인 '계몽의 시대'였다고 본다. 중국, 인도, 중동, 유럽과 교류하면서 문명을 꽃피웠고, 서구 르네상스보다 이른 시점에 과학혁명을 이뤄냈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찬란한 문화를 일군 중앙아시아가 오늘날 세계의 주역이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계몽의 시대에 일어난 이슬람 신학 논쟁으로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움직임이 사라졌고, 앎의 방식으로 신비주의 신념을 의미하는 수피즘이 대두했다고 주장한다.
길. 880쪽. 4만5천 원.
▲ 영적 휴머니즘 = 길희성 지음.
50년 넘게 종교학과 철학을 연구한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가 '탈종교' 시대에 종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논했다.
저자가 품은 문제의식은 '종교와 휴머니즘이 양립할 수 있는가'이다. 그는 "종교는 휴머니즘과 같이 가기 어렵지만, 종교의 핵심인 영성은 휴머니즘과 같이 갈 수 있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종교가 휴머니즘을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성직자와 일반 신도를 구별할 수밖에 없는 체계에 있다. 휴머니즘은 차별 없는 존중을 요구하는데, 주요 종교는 성직자 위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영성이란 신을 향한 갈망이며 신과의 일치를 위한 노력"이라며 "인간은 본성상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성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영적 인간관에 바탕을 둔 영적 휴머니즘은 세속화된 인간관에 기초한 세속적 휴머니즘과 함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지구적 문명 위기의 탈출구는 무종교도 세속주의도 아닌 제3의 길, 영적 휴머니즘에 있다"고 결론짓는다.
아카넷. 924쪽. 4만5천 원.
▲ K폭력 = 트렌트 백스 지음. 이은구·심은지·양성은 옮김.
뉴질랜드 출신 사회학자로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가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집단 따돌림과 폭력을 분석한 학술서.
저자는 서울소년원에서 만난 학생들 사례를 소개한 뒤 점화, 연료, 화재, 폭발이라는 열쇳말로 따돌림이 확대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는 한국에서 학교폭력이 군대·직장·사회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따돌림이 사회구조 전반에 나타난다고 말한다.
저자는 "피해 경험은 K폭력 사이클에 불을 붙인다"며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고, 피해는 피해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어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선과 악을 포함한 인간의 열정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삶을 초월하려는 몸부림"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왕따와 일진은 서로 반대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같은 목적의 시도"라고 지적한다.
한울아카데미. 360쪽. 3만9천 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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