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평가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3위에 머물러 왔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양 진영으로 갈린 우리 정치권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1위와 2위의 두 전직 대통령은 재임 시 진영 간 극심한 갈등에 시달렸으며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바 있다. 이는 각각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에 '박정희 신화', '노무현 신화'를 낳으며 우리 정치가 '후계자 정치'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초래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국내에서 저평가돼 온 배경엔 민주화 세력인 그가 독재세력인 김종필과 손잡았다는 진영 논리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유일한 연정 시도로 기록될 'DJP연합'은 비록 절반의 성공으로 그쳤으나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에 걸쳐 국민통합, 화해와 공존의 가치를 세우기 위한 통합 리더십으로 재평가가 시도되고 있다.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를 펼쳐낸 장신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사료연구담당관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인터뷰에서 "DJP연합은 정치적으로 대선에 대응하기 위한 정략적인 목적을 부정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성사가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박사는 "김대중은 1985년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이미 김종필을 언급했다"며 "민주화 이행 조건으로 독재정권 흐름에 있었다 하더라도 공화당 비주류 이탈 세력은 전략적으로 포섭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DJP연합은 대선 승리를 위해 소수파 연합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론 독재정권으로부터 탄압받은 당사자인 김 대통령이 정권교체 세력이 됐을 때 국민을 통합으로 이끌 수 있도록 화해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장 박사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종필은 이회창과 손잡을 생각도 있었는데 이회창은 김영삼도 치고 김종필도 쳤다"며 "반면 김대중은 한번도 정치보복이나 배제의 정치를 말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DJP연합은 의원내각제 개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파국을 맞았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결국 대통령이 권한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한 권력이 나눠지지 않는다는 쓰디쓴 교훈이 됐다. 장 박사 역시 "김 대통령의 정치적 지향점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만 "국무총리 제도로 보면 김종필을 비롯해 박태준, 이한동 등 자민련 소속 총리만큼 실세 총리가 없었다. 국무총리의 권한 보장을 통한 권한 분산 및 장관 임명 등을 통해 연정 구현을 위한 시도는 평가될 만하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그에 비해 문재인정부는 정권 초반에 개헌할 수 있는 호기도 있었고 연정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국민의당도 있었다"며 "연정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건데 기조가 적폐청산이다보니 배제의 정치로 치닫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DJP연합과 같은 모델이 내년 대선에서도 유효할 수 있을까.
장 박사는 "후보가 중요하긴 한데 민주당에서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없다. 정의당은 똑같은 한패로 여겨지니까 이질적 세력 사이의 연합이라는 인상을 주기 어려울 것"이라며"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 정도가 민주당과 손잡으면 연정으로 보이겠지만 진영 재편으로 보여질 뿐 DJP 연합 정도 수준의 연정이라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집권 내내 소수파였던 김 대통령이 역사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장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김대중은 집권 내내 소수파였고 국내에선 여건이 바뀌긴 어려웠다. 대신 대선 직후 DJ는 '인기 있는 대통령보다 능력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 한다. 상대를 적대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 않았다. 다수파 전략이다. 모든 정치는 다수파 전략을 취해야 한다. 부정적인 혐오정치는 씨앗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필요하다.지금의 정치권이 배워야 할 자세이고,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김태은 기자 tai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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